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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현 Feb 04. 2024

2화_호주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1년간 호주 워킹홀리데이


5개월차에 접어들었을 때 1화를 썼고, 11개월차가 되어 2화를 쓰게 되었다. 

난 고작 며칠을 미룬 것같은데 반년을 미뤘다고 하니 시간과 돈은 덮어놓고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6개월 전 1화를 쓸 때 나는 이 새로운 장소에 여행자가 아닌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적응을 해나가는 중이었고, 안정과 불안정을 무수히 오가는 불안정 상태였다. 그에 비해 지금은 굉장히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안정기에 도움을 준 많은 원인들이 있는 데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앞으로의 계획이 어느정도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우선 워홀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호주에 가서 1-2년정도를 잘 지내는 것이 목표였다. 다행히 워홀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호주에 와서 지내다 보니 이제 앞으로의 10년, 30대를 어떻게 보낼 지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실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주에서 1-2년 지낸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프리랜서로 자리를 잘 잡고, 30대 중반에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하는 등 나름 계획은 있었다...만! 막상 이곳에서 지내다보기 호주의 라이프 스타일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곳에서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이유는 사실 다른 나라에서 장기간 일을 하며 지낸 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비자부터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이미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으니 불나방처럼 경험에만 목적을 둔 채 살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때 쯤 운명같게도 호주 영주권 취득가능한 직업군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추가 되었다는 이민성 발표가 나왔다. 영주권을 따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애초에 영주권 취득가능한 직업군에 내 직업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없었기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며 마음을 접어두었는데, 운명의 장난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사실 이민성 규제는 정말 매년 달라질 정도로 변동이 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는 가능하다는 점에 있어서 난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마침 유현이도 이 곳 호주에서 더 지내고 싶었고, 우리의 마음은 맞닿아 소리를 내며 새로운 10년을 계획하게 되었다. 







내 마음을 빼앗은 호주라이프중 가장 자극적인 부분은 '임금'이다. 우선 23년 기준 호주는 시급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산업군와 계약 포지션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카페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의 경우 캐주얼로 일을 한다면 최저시급은 29.04달러이다. 워홀 세금 15%를 떼고나서 실수령 약 24.6달러를 받는다. 그래픽디자이너의 경우 엔트리 웨이지가 보통 6만5천불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초봉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있다. 물론 지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시장물가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이 무서운 속도의 물가상승률로 호주를 따라잡아 시급 차이의 비율만큼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추가적인 지출이 많을 것이고,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국을 떠나 살 만큼의 큰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나를 정말 사로잡은 호주의 매력이 무엇이냐 한다면, 각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존중인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한국은 각 나이에 따라 요구되는 모범적 삶의 모습이 있고, 그 스펙트럼이 좁아 범주에 속하지 못하거나 않을 경우 다르다는 시선보다는 틀렸다는 시선이 강한 것 같다. 인간의 삶은 본디 다양한 것이고,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다양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데, 한국의 사회 구성원들과 비슷해지기를 강요되는 분위기가 나는 참 피로했다. 실제로 또 그런 것들을 의식함으로써, 내 모습이 많이 재단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내가 원래 어떤 기질이었는 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 지 등 잊혀진 내 모습에 대해 자주 찬찬히 오래 돌아보곤 한다. 호주는 이민자로 구성된 나라이다보니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그 삶들은 각각이 존중을 받고, 바뀌길 강요받지 않으며 살아간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 나이와 관련한 생활 수준, 계획, 직업등에 대한 의견은 정말 단언컨대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고, 오히려 내가 30대 초반이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다고 했을 때(아마 이 고민은 한국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상황과 문제를 대처하는 고민이라 한국문화를 모르는 사람이 들을 땐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오히려 이런 경험이 생기다 보니 '그래, 내가 왜 데드라인이 있는 것처럼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들이 차오르고, 압박에서 느슨해지며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되었다. 각자의 타고난 기질에 따라 같은 공간에서 지내더라도 다르게 느끼는 데 그런 점에서 난 한국사회에서 유연하게 지내고, 적응하기에 좋은 성향의 사람은 아닌 것이다. 




다소 개인적인 측면에서 호주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점은 바로 '고립'이다. 고립은 워홀 초반부터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키워드였다. 외향적인편이라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사실 의식하지도 못했고, 혼자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의식하지 못한 스트레스는 어느정도 있었겠지만, 며칠 정도 혼자 쉬고싶다는 생각정도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호주 도착후 한달정도는 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본격적으로 호주 라이프를 시작하면서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게 되었는데 그 때의 평온함을 묘사해보자면, 마치 내가 요가를 할 때 느끼는 기분과 흡사했다. 외부로부터의 압박이 없고, 내면으로 향하는 에너지를 쓰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며, 나의 호흡에 모든 것이 맞추어진다. 이곳 생활 초반부의 고립은 나에게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을 주었고, 이후의 시간에서는 뜻밖에도 많은 자유를 주었다. 고립은 사전적으로 갇혀있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자유와 함께 할 수 있을까싶지만, 자발적 사회적 고립은 타인의 선택과 시선에서 자유로운 온전한 개인의 자유를 선물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보석이다. 가끔 한국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한 술자리나 모임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집중되는 에너지를 즐기는 것이 더 행복하다. 내가 불편해 하면서도 사회적 기준을 애써 충족하기 위해 쓰던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실제로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어지다보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도 늘어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시간을 지루해 하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의 어떤 적절한 시기에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20대 중반 어디쯤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평가를 내렸을 것같다. 좋은 타이밍이다. 







일년의 경험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고, 막상 글쓰기 시작하고도 마무리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호주에서 지내며 느낀바와 이 곳에서 지내기로 다짐하게 한 일련의 생각의 흐름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힘의 원동력이 되었고, 글을 공유하여 호주 워홀을 계획한 누군가에게는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길 기대해본다. And, I just get back into the swing of 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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