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혼식 로망 없는 줄 알았지

사실 많고, 구체적이었어

by 현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추구미가 공주도 아니고, 핀조명 아래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나만 바라보는 가운데 평소답지 않은 요조숙녀의 발걸음으로 버진로드를 걷는 상상을 하면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다(지금도 눈물이 난다). 심지어 신부는 꽃으로 꾸며진 방 안에 앉아서 사람만 바뀐 채 사진만 찍는 것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서 남편의 손으로 넘겨받는 방식도 공감하기 힘들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따를만한 헤리티지가 있는 문화도 아니라서 결혼식이라는 것은 나에게 즐거운 일보다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이벤트에 가까웠다. 누가 와서 축하해 주고 떠난 지도 모른 채 겨우 2시간 남짓으로 그 귀한 인생 경조사를 해치운 다는 게 허례허식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혼식을 하지 않을까 고민을 꽤 했었다. 하지만, 오빠는 식을 하고 싶은 눈치였고, 나 혼자 오빠부터 양쪽 가족을 설득시킬 용기도, 그만한 타당한 이유도 마땅히 없었다. 보다 중요한 건, 먼 훗날 내 선택에 대해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확신도 서지 않았다. 또 우리는 해외에서 지내고 있으니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겠나 싶기도 해 간단하게 기본만 하자며 식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또 나를 간과했다. 안 하면 안 했지, 마음에도 들지 않는, 대충 하는 결혼식은 적어도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재밌는 건, 지금까지 준비하며 꽤 대충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친구들에게 '뭐 대충~ 어디 연락해서 계약했어'라고 했지만, 예식장은 베뉴별 특징을 표로 정리했고, 야외 촬영은 인스타에서 스트릿 스냅 작가를 찾아 계약하고, 컨셉, 스타일링 모든 것들을 혼자 계획하고 준비하여 진행했다. 사실, 이때까지도 나는 애쓰지 않고 대충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야외 촬영 며칠 후, 친구와 통화를 하는 데 그녀가 하는 말, '니가 대충 했겠니~ 옷이며 신발이며, 스타킹이며, 작가며, 뭐 하나 마음에 없는 걸 했겠냐고~'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계속해서 대충이라 표현했던 것은, 예를 들어, 내 머릿속에 그려둔 착장에 흰 레이스 플랫슈즈를 신었어야 했는데, 집에 있는 흰 웨스턴 부츠를 신은 것이었다. 그것을 스스로 허용했다는 것이 이 일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 나에게 대충 한다는 의미였다.


어쩐지 준비하는 일들이 너무 피곤하고 괴롭더라 했어...


그래서 '나 사실 결혼식 준비하는 거 즐겨'로 마음을 바꿨다. 이러한 태도로 다시 결혼식 로망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로망이 있었다. 그 로망을 실천할 현실적 여건이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혼식장은 야외결혼을 하고 싶었다. 공간이 좁지도 않아야 하고, 오션뷰는 싫었다. 숲 속에서 보다는 넓은 잔디에 큰 나무가 몇 그루 있어야 했다. 데코레이션이 과하지 않아야 하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분위기였으면 했다. 원하는 방향이 확고하다 보니 유럽의 야외 결혼식을 봐도 한눈에 마음에 드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찰리푸스의 결혼식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그렸던 공간 그 자체였다! 그의 팬은 아니지만, 딱히 그의 취향이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터라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연하겠지만, 완전히 프라이빗한 공간에 뭐 어쩌구 저쩌구 굉장히 비싼 공간이었다. 항공샷도 예전에 봤던 것 같은데 그들의 인스타 계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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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고 결혼식을 한다면 이 드레스를 꼭 입고 싶다며 팔로우해오던 웨딩드레스 브랜드의 인스타에 오랜만에 들어가 피드를 보는데, 찰리푸스 결혼식 사진이 떡하니 있었다. '응? 왜?' 캡션을 읽어보니 찰리푸스의 아내, 브룩이 입었던 드레스가 그 브랜드였던 것이다. 익스큐즈뭬??? 그렇다. 사실 지구반대편에 나와 취향이 찰떡인 아가씨가 찰리푸스와 결혼을 한 것이었다. 우리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만, 평행이론 그런 거일까요, 브룩씨? 당신은 이번 생에 해냈네요. 브룩이 입었던 스타일의 드레스를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이 브랜드의 특징인 섬세한 주름과 우아하면서 동시에 어딘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디자인을 좋아했다. 맨날 가격 단위를 잘못 읽어 '어? 백만 원 대면 한번 질러볼 수 있는 거 아냐?' 하다가 천만 원의 벽에 무릎을 꿇는 것의 반복이다. 못 입어서 아쉽지만 세상에 살면서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겨우 이 정도 일로 상심하거나 나를 비관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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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심플하더라도 꼭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서치 중인데 쉽지 않다. 벌써 주문했다가 반품한 옷만 3벌째다. 약간 지치지도 하고 감을 잃어가는 것 같기도 하는 데 영원히 고민할 일은 아니니까 대충 해치우지 말고 열심히 더 찾아볼 예정이다. 3주 전쯤에 야외 촬영을 했는데 그 후기와 사진은 다음 편에 기록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