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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Sep 25. 2023

북극에 가 본 사람만이 북극에 대해서 쓸 수 있나?

나의 글쓰기 이야기

   나의 글쓰기는 애매하게 시작됐다. 결혼 후 시골(면 단위)마을에 살게 된 나는 정말 심심했다. 다행인 것은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것, 또래 친구도 없고 당분간 일도 없었던 나는 평일 낮시간에는 혼자 시간죽이기를 해야했다.

카페는 있었지만 죽치고 앉아있을 만한 곳은 못되어서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에 다섯권 씩 책을 빌려봤다. 대부분 소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무료했고 외딴 섬처럼 외로웠다. 그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모집 중인 글쓰기 강의를 보았다. 글쓰기라... 읽기만 좋아하는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어려울거란 걱정은 되었지 무료함을 이길만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던 나는 덜컥 등록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모르지만 나의 어설픈 글쓰기와 어쩔 수 없이 드러나야 하는 속마음들을 내비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말로도 속 마음을 남들앞에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사람이므로...


  긴장하고 간 첫 수업은 의외로 단출했다. 학생은 총 네명, 암으로 요양차 귀촌했다던 할아버지 한 분, 문학을 사랑하는 고상하신 할머니 한 분, 그리고 무명작가라는 40대 여성, 그렇게 글쓰기 모임은 시작되었고 선생님도 중년의 지긋하신 분이었다.        

   강의라기보단 그의 글쓰기 인생과 작품을 소개하고, 작게나마 숙제를 내주는  긴장감이 적은 수업이었다. 등단할 것도 아니고 발표할 것도 아니니 자신의 글을 써오라는 것.

   하지만 마음과 달리 글을 쓰기 전의 과정이 힘들었다. 뭘 써야하나? 이건 너무 평범하고 진부한 이야기 아닌가? 이런 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은데. . .

  글쓰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글 한 줄 쓰기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주제, 소재, 어떻게 이끌어 가야할지...


  고민 고민 끝에 나는 가장 관심있는 분야인 여행을 선택했고,(이전에 정리해놔야지 하고 쓴 일기가 뒤죽박죽 있었고, 여행기라면 내면을 그리 드러내지 않아도 될 것같아서..) 우등생은 아니지만 모범생 기질을 살려 매 수업마다 숙제를 충실히 했다. 매주 다가오는 그 날이 두려웠지만 숙제를 마친 후엔 원고라도 마친 작가처럼 후련했다. 각자 짤막하게 써온 에세이를 발표하는 것이었지만 늘 숙제를 해오는 사람은 둘 뿐이었다. 그래서 원하던 원치 않던 나의 글을 발표해야했다. 모나고 찌그러진 글이었지만 A4를 가득채워 두 세장 인쇄된 글은 뿌듯했다. 대학시절 밤을 새워 마친 레포트와 같이 따끈따끈한 글(실제로 막 프린터한 종이는 따듯한 감촉이 스며 좋았다)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것도 즐거웠다.


   막 글쓰기에 재미를 느껴갈 무렵, 소재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선생님은 늘 이야기하셨다. 우리세대는 전쟁이나 분단처럼 극적인 사건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글감을 찾기가 쉽지않을것이라고... 북극에 가 본 사람만이 북극을 쓸 수 있는건 아니지만 당연히 그 곳을 잘아는 사람이 더 상세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난 그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이 아닌 부분을 창조해 낼 수 있-창조와 상상-의 영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글과 그림을 좋아하고 즐겼는데 사실은 그것도 작가의 오감적 경험에 기초하여 상상과 재조합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 글쓰기의 그 한계가 갑자기 나타난 큰울타리의  같이 생각되었다.


어쩌면 핑계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글쓰기 수업끝난 이후로 그리고 그러 한계를 인식한 후  평범하고 경직된 내 삶에서  글쓰기는 조용히 사라졌다.

  글을 읽는 건 좋아도 그를 정리하는 건 어려웠다. 오히려 읽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걸리기도 하여 일기장마저 서랍 한 켠에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가끔 달러구트의 꿈백화점이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과 같은 엄청난 상상력과 작가가 창조한 미지의 세계를 마주했을 때 황홀하고도 샘이 나기 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얼마전  우연히 몇 년전 내가 썼던 여행일기를 꺼내보게 되었다. 그때의 감정과 새로운 느낌, 여행에서 보았던 생생한 축제의 장과 뜨거운 음식의 향냐가 되살아났다. 다시금 그날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느꼈다. 쓰고 싶다. 나의 이야기를... 평범하지만 소중한 오늘을 미래의 나에게 남기고 싶다.


글 한 줄을 써내기 위해 나는 내 마음을 얼마나 들여다봤던가? 그렇다. 글쓰기는 어쩌면 평범한 나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인 것 같기도 하다.

나석주 시인의 말처럼 삶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북극에 가지 못하면 어떠나? 나는 이 곳에서 나만의 북극이야기를 만들어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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