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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안녕 Oct 17. 2023

거울과 꽃

    뽀얗게 김이 서린 거울을 어루만진다. 거울에 비친 모습에 낯익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모습이 비친다. 34살,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로 접어든 그는 이번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지우려는 기세로 문질렀다. 움푹 패인 눈 밑, 탄력이 줄어든 턱 라인에는 군데군데 축 늘어진 살이 볼품없이 붙어있다. 

 그는 이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거울 속의 남자는 곧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옷장 깊숙이 보관되어있던 두툼한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동시에 나프탈렌 냄새가 그를 감쌌다. 한층 차가워진 공기에 코끝이 싸했지만 정신이 또렷해지는 기운에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눈에 띈 것은 지저분하게 버려진 누더기.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새였다.  쓰레기처럼 나동그라진 새의 사체. 

  지상보다 높은 세상에서 살다가 생명력의 상실과 함께 추락한 물체는 늘상 보는 것임에도 낯설었다. 

 평범한 것의 낯섦. 새에게는 지상이 지옥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둘러 갔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멀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고요함이 싫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잠을 청하지 못하는 그는 창문가 자리를 고수한다. 

차창 풍경은 높은 건물에서 낮은 건물로, 논, 산으로 빠르게 바뀐다. 마치 색을 입은 무성영화 같다. 창 밖의 나뭇잎의 색상으로 그는 계절의 흐름을 실감한다. 도시에 살기 전까지는 너무나 당연히 도처에 있었기에 나무는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는 매년 바람이 차가워지면 기다란 장대를 들고 하루종일 감을 따곤 했다.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커다란 감나무 아래는 그의 놀이터였다. 감이 잘 익을 때가 되면 벌레가 꼬이고 까치들이 날아들곤 했다. 

  따스한 볕아래 발갛게 잘 익은 단감을 먹을 때의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맛, 그것이 어린 그에게는 가을의 풍경이었다.


 고향의 가을은 이미 스산한 기운이 지배하고 있다. 눈을 감아도 선명히 그려낼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마을 어귀, 여느 시골동네가 그렇듯 풍경은 그가 집을 떠나던 15년 전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동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는 지역의 경찰이자  관리인, 심부름꾼 모든 일을 자처해서 하곤했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면장까지 할 위인이라며 아버지를 추켜세우곤 했고 가족들은 아버지는 꼭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흙투성이였던 친구들의 부모님과 달리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출근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런 그의 아버지는 3년 전 가을이 막 다가오던 날, 마을 뒷산 계곡물에 빠져 익사했다. 눈 감고도 지리에 빤한 사람이 평생 갈일이 없던 그 곳에 가서 목숨을 잃은 것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자살이라니, 술 먹고 물귀신에 홀렸다느니 말이 많았다.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그는 울지 않았다. 



  열려있는 대문을 슬쩍 밀고 들어가니 마루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있었다. 잠깐 이웃의 집에간 것일까. 금방까지 머물렀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켜져 있는 tv에서 젊은 남녀배우들이 서로의 마음을 시험하는 미묘한 밀당의 기류가 흐르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오래도록 그는 집에 오는 것을 꺼렸다. 결국 면장이 되지 못하고 퇴직한 그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술꾼. 그 외에 표현할 수 있는 바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그럼에도 집 밖을 나갈때는 술을 사러 슈퍼를 갈 때조차도 평생의 습관대로 양복을 입고 나가곤했다. 

  잠시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다 부엌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식탁 위에는 마당에서 딴 감이 가득했다. 그는 단감 하나를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아직 설익어 딱딱하고 텁텁했다. 마당으로 나와 와먹다 남은 감을 담벼락 너머로 던졌다. 오다 보았던 죽은 새가 떠올랐다.     

  

  그는 계곡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가는 길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담고 있을 그곳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그의 계곡이기도 했다.

계곡물은 시리도록 투명하고 맑았다. 마땅한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한 부자父子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무릎까지 바지를 동여맸음에도 상의까지 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아버지는 족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았고, 아들은 그 속을 헤집으며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물 속에 두 사람은 나란히 맨발을 담그고 웃고있다.

 그는 생각했다. 주정뱅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매일 좌절의 시간을 죽이던 아버지를, 넥타이를 메고 동사무소로 출근하던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그의 기억 속에는 없는 피 끓던 젊은 모습의 아버지, 소년 시절의 순수했을 아버지를. 그리고 초라한 주정뱅이로 차디찬 계곡물 속에서 마지막을 맞은 아버지를, 

  이 남자의 삶은 무엇으로 점철 될 수 있을까?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꼭 지금 그의 나이로 되돌려 보았다. 시간의 무게에 짓이겨져 더 이상 살아내지 못한 그에게도 눈부신 오늘의 햇살처럼 찬란한 있었을 것이다.      

  가방을 열어 준비해 온 꽃을 꺼냈다. 떠내려가는 물결에 꽃을 정성껏 한 송이씩 띄웠다. 꽃 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흩어져 떠내려 갔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꽃이었다.

'아빠, 또 올게요'

돌아오는 길, 그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사내를 여럿 보았다. 그 남자는 터미널 식당에서 오뎅을 팔고 있었고, 군복을 입고 있기도 했으며 하염없이 승합실 좌석에 앉아  하얗게 물든 머리에 세상의 이치를 담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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