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

미스터리 단편

by 오늘의안녕

젠장, 또 왔다. 며칠 전 술에 취해 담배 한 갑을 사고는 바닥에 널부러지는 바람에 경찰까지 불러 귀가시킨 사람이었다. 오늘도 비틀대며 유리문과 실랑이를 하는 걸 보니 꽤나 술이 된 모양이다. 오랜 실갱이 끝에 그가 들어오는 순간 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새카만 벌레들이 떼로 들어왔다.

징글징글한 것들. 일부는 입장과 동시에 문 위에서 발광하는 전기 벌레퇴치기에 타닥거리며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지만 살아남은 것들은 자성에 이끌리듯 이곳저곳으로 날아들어 삼각김밥 위 조명, 신선 음료, 담배 매대 위의 빛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 필라멘..하나. 딸국.”그날과 똑같은 상황이다. 카드는 여기에 꼽아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드를 계산대 위에 휙 던지는 그의 태도에도 정유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제발 제 발로 나가기만 해라. 토하지 말고.’

“이제 시작이야. 아무것도 모르고 잘난 척 하는 것들 전부 다 뒤져라. 핫하하하” 취객은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자신 옆의 보이지 않는 청자에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휘청대면서도 나름의 리듬감을 가지고 오르골 위의 발레리나처럼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짤랑짤랑-짤랑, 소리가 멎고 나자 정유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제 막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각, 편의점 내부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뜻하지 않은 불청객 벌레와의 사투를 벌이고 나면 물건 들어오는 시간까지는 쉴 수 있을 터였다. 식품이 대부분인 이곳에 들이닥치는 벌레들은 약을 쓰지 않고 일일이 잡아야 해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정유는 카운터 한켠에 세워둔 잠자리채를 칼을 빼 들 듯이 비장하게 뽑아 그것 들에게로 향했다.


[cosmos ditector] ‘러브버그 새끼들, 극혐이다 진짜. 바퀴보다 더 싫음’

오분도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plas-pals]‘버그, 그거 조심해라. 뭐든 갉아먹는다는데? 나무뿌리, 동물사체, 심지어 플라스틱도 먹는데 심지어...

http://cosmossecret.789.dos/

내용: 지구의 자전 축 변경으로 인한 지구핵 이상발생. 아마도 러브버그는 그곳과 연관이 있는 듯. 지금까지 밝혀진 곤충 종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번식 특성이 너무 상이함

[보이저2]: 아니, 인위적으로 만든 종이라는 설도 신빙성이 있어. 생화학전을 넘어선 생물교란전 용으로... 나타난 시기와 번식 속도, 군집 양상을 살펴보면 말이지. 좀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사위는 고요했지만 정유가 활동하는 커뮤니티는 이 시간이면 시끄러워졌다. 아니, 오히려 모두가 잠든 지금 골수 멤버들이 활발히 활동하곤 했다.

‘바보냐, 지구 내핵이 어떤 구조인지 알면 그런 말 못 할텐데’정유는 조소했다. 그래도 섣불리 다른 이의 의견에 반박하지 않는 것, 그것이 정유가 지향하는 탐구자로서의 자세였다.

[starlink79]: 사실 지구 내에 다른 지구가 있다는 것 반은 맞고 반은 틀림. 지구 내가 아니고 외부랑 연결되는 웜홀이 존재하는데 NASA에서 90년대에 발견함. 수 억년 전 우리 은하계가 팽창하면서 구멍이 뚫린 것으로 추정됨. 그 구멍이 지반 내 웜홀과 연결되었다고 봄

늘 획기적인 주장을 하곤 하는 starlink79의 말이었다.

‘역시, 골때리는 녀석이군. 근데 그 말인즉? 그리로 외계인도 나올 수 있다는 건가?’

[unisex]: 난 그것보다 방사능 유출설이 더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전국에 소형 원자력 발전을 지방마다 설치하면서 몰래 유출된 방사능 수치가 기준치보다 30배가 넘는 곳들도 많은거 알아? 정부기관에서 수치 조작하고.

코스모스 디텍터, 정유는 그곳에서 그렇게 불렸다. 누구도 그에게 담뱃값이 어떠니, 시급이 어떠니 묻지 않았다. SF에 푹 빠져있던 학창 시절을 지나 AI,사이보그 같은류의 영화들에 빠져 살던 정유에게 로봇이 운전하는 시대는 머나먼 미래의 공상일 뿐이었지만 어느새 당연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사이 장래희망으로 로봇을 꿈꾸던 어린 소년은 대기업 정직원 취업이 꿈인 청년으로 자라났다.

상상했던 것 보다 더욱 황홀한 미래에 던져진 이들은 블랙홀에 끌려가듯 하나둘 빠져나갔고 몇몇 만이 남아 더 심도 있고 견고화된 이세계에 빠져들었다.

남은 이들은 랩틸리언이니 UFO니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말고 진짜배기, 역사 속에서 그랬듯 현대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실존적 존재로 탐구영역의 방향성을 잡았다. 그중 자칭 변호사라는 보이저2 는 늦은 시간에도 늘 접속해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변호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맨날 일도 없이 이러고 있겠냐만은

정유의 퇴근길은 다른 이들의 아침을 거슬러 갔다. 대부분은 정유와 반대 방향으로 바삐 움직였고 같은 쪽으로 걸어가는 이도 더러 있었지만, 정유의 걸음에는 지난 밤의 고단함이 매달려 있었다. 무거운 발자욱을 남기고 집에 도착하자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소파에 드러누워 뉴스를 보고 있다. 아니 틀어놓고 있었다. 자는지 보는지 혹은 어젯밤 소파에서 밤을 지새웠는지 알 길이 없다.

“저 왔어요.”대답도 미동도 없는 그를 두고 방문을 닫는 정유의 귀에 뉴스에서 알리는 간밤의 살인사건 소식이 파고 들었다.


‘피해자 이모씨는 30대의 가정주부이며 돌이 막 지난 아들과 끔찍하게 피살된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

컴컴한 방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들여다 보았다. 포털사이트가 온통 그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지난 새벽 창전동 P아파트 1층 이모씨의 집에 침입한 누군가 이모씨와 그의 3살 된 아들까지 잔혹한 수법으로 살해당했다. 도난 당한 것은 없었고 집을 뒤진 흔적도 없는 걸로 봐서 경찰은 원한 관계에 따른 살인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피해자가 평범한 가정주부이며 이곳에 이사온지 석 달도 채 되지 않은 점, 주변에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가족의 증언을 빌어 묻지마 살인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주변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 ... 피해자는 계속된 열대야로 피해자는 창문을 열고 잠들었고 범인은 열린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침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

블랙박스와 여러 가지 알리바이로 용의선상에서 벗어났지만 공교롭게 출장 간 날 가족이 변을 당한데 있어 1차 용의자는 남편이었다고 했다.

정유는 방금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활짝 열려있던 베란다 창문, 그리고 방충망에 덕지덕지 붙은 벌레를 떠올렸지만 이내 13층임을 깨달았다.

[add- ]‘그 아파트 우리동넨데 아까 과학수사대 왔었음, 그 집 방충망이 썰려있었다. 엑스자로... 마치 표식이라도 하듯이... 동네 아줌마들 말로 그 여자가 사이비 신도였다고 하는 것 같기도. 근데 그 문양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단 말이지.’

[plas-pals]‘구라 즐’

[starlink79] ‘사진 좀’

[add- ] 됐냐. 구라라고 한 놈 꿇어라.

애드가 올린 화질 낮은 사진에는 하얀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과 날카로운 무언가로 잘린 듯한 방충망, 그리고 폴리스라인, 경찰차 등이 보였다. 확대해보니 정말로 방충망이 큰X자로 찢겨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진작에 찢어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starlink79]: 마치 2년 전 애리조나주에서 찍힌 미확인비행물체의 비행 궤도 같음.

그 영상은 정유도 기억한다. 흐릿한 사진이지만 밤 하늘 궤이한 궤도로 비행하다 사라지던 존재. 하지만 드론도 AI도 발달한 시대에 영상이라고 전부 믿을 수는 없다.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니까. 하지만 스타링크의 말에 동조하는 댓글과 외계인의 존재 근거에 대한 댓글이 우르르 달렸다.

좀 자둬야 할테지. 정유는 애써 눈을 감는다. 공시 공부 6년째, 밥값이라도 하고자 몇 달만 하자고 시작한 편의점 알바는 벌써 2년째. 7번째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책상 앞에 앉은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지난 시험도 지난 시험도 고작 몇 문제 때문에 떨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관뒀을텐데...

정유는 지난 6년을 생각해보았다. 지난 시간은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 버렸다.

시간은 실존하지 않고 과거,현재, 미래가 공존한다던데 3차원에 사는 존재에 있는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언제나 현재만 있을 뿐이다. 정유는 자신이 늘 과거에서 현재로 떠밀리듯 존재하는 것 같았다.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열심히 살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는 온통 그 사건 이야기다. SNS에 접속한다.

요즘 핫하다는 맛집, 서울외곽에 생긴 주말에 꼭 가봐야 할 신상 카페, 주말 해외여행 싸게 가는 꿀팁, 그리고 재영. 커다란 선글라스에 얼굴을 반쯤 가린 그녀는 빨대를 입에 댄 채 승용차에서 찍은 셀카를 올렸다.

#커피수혈, #주말 드라이브 힐링코스, 정유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점심 좀 사주시겠어요? 지갑을 두고 와서... 내일 드릴게요.” 매일같이 맨 앞자리에 앉던 여자, 커피를 물처럼 마시던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온 건 의외였다.

그날 둘은 학원 앞 백반집에서 5천 원짜리 백반을 먹었다.

“공부한지 얼마나 되셨어요? 전 올해 꼭 붙어야 해요.”말하는 재영의 은 낯빛은 어두웠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 나이 또래 여자들이 그렇듯 귀염성 있었다. 다음 날 학원에 가니 재영이 자신의 옆자리에 정유의 자리를 맡아두었다.

“내일부턴 일찍 나오세요. 이거 맡느라 눈치 보였어요.”

정유는 재영을 따라 제일 먼저 강의실 문을 여는 사람이 되었고 둘은 매일 같이 점심을 함께 먹게 되었다. 새벽부터 나와 강의를 듣고 밤까지 문제풀이를 하고 어스름과 어둠 속을 걸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손을 꼭 맞잡고 합격했을 때 주어질 소소한 월급과 행복, 같이 가게 될 관광지와 함께 입을 커플티와 같이 남들처럼 평범한 데이트를 구체적으로 그리며 즐거워했다.

그 시간들은 정유도 합격했다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자되었을것이다. 하지만 시험의 당락은 둘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그리고도 2년을 더 기다려 준 재영을 정유도 더이상은 힐난할 수 없었다.

끝까지 고배를 함께 마시던 대학 동기 지성마저 합격한 후 그들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정유의 불합격 통보 후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둘은 통하는 것이 많아 보였다. 호봉이니, 민원처리니, 인사니...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자 정유는 말없이 술잔만 비워댔다.

단 두 문제, 그 두 문제 때문이었다. 그들과 정유의 운명이 갈린 것은.

아니 어쩌면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나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편의점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야간이라 저녁 시간이 지나고 나면 손님도 많지 않고 다들 잠들 시간이 지나면 인적이 끊겼으니까. 시간 맞춰 물건을 비워진 물건을 채우고 신선식품을 차례대로 줄지워놓고 청소를 하고 나면 여유시간이 많았다. 한두 달 전 벌레들이 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새벽녘, 손님은 거의 오지 않고 정유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70대 가량 되었을까, 나이에 비해 기세등등한 노인이 들어선다.

“이봐, 오늘은 왜 폐지가 없어?”

“아...어제 밤 늦게 어떤 할머니가 가져가셨어요.”

“아니, 그걸 주면 어떻게 해. 여긴 내 구역인데. 어떻게 할거야?”

노인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저희는 그냥 정리해서 내다 놓는겁니다. 그 후는 알아서 가져가셔야죠.”

“아니, 몇 년 동안 내가 맨날 가지고 가는데. 그거 몰라? 젊은 놈이 싸가지 없게 따박따박”혼자 혈압을 높이던 노인은 성큼성큼 주류판매대로 걸어가 소주병을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대뜸 소주병을 따서 한 모금 마신다. 정유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를 향해 외쳤다.

“계산하고 드셔야죠.”

“이건 자네가 사, 오늘 공쳤으니까.”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얼른 계산하세요. 천 구백원이에요.”

“못해.” 그대로 소주병을 들고 문을 나서는 노인은 날쌨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정유는 한달음에 달려가 노인의 손에 들린 파란 병을 낚아채어 그대로 남은 술을 하수구에 부어버렸다.

“뭐하는거야?”

“아니, 할아버지야 말로 뭐하시는 거에요. 이거 절도예요.”

“뭐라고 이 싸가지 없는 새끼가... ...이새끼 가만안둬” 등 뒤에 울려퍼지는 육두문자를 무시한 채 격앙된 마음으로 편의점을 돌아왔다.

‘씨발, 다 뒤졌으면 좋겠다’문 앞의 벌레 시체들을 밟아 짓이겼다.

코스모디텍터님,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할까요? 스타쉽79의 제안이었다. 늘 반말로 하던 댓글놀이와 채팅에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어색했다. 2년 넘게 새벽녘을 지새우며 친분을 쌓아온 골수멤버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온라인상의 신상 따윌 믿을 사람이 있을까.

또 각자의 지식과 가설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자신의 개인적인 신상이나 사생활은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당초 카페지기의 철저한 규칙이었으며 그러한 사항을 어기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퇴장 당했다. 그렇게 철저하게 카페를 지키던 카페지기도 1년 전 취업했다는 말을 뒤로 점차 활동이 뜸해지더니 게시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요 몇 달째 AI신규가입자들의 광고글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점점 새벽시간의 터줏대감들은 불만이 쌓였다.

그들은 고민 중이었다. 폐허가 되어가는 이 카페에 잔류할지 혹은 새롭게 터전을 옮겨 자신들의 색깔을 입힌 유니버스를 만들지 말이다.

두꺼운 고딕체의 간판이 현란하게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자들의 눈길을 잡아 끌기위해 애를 쓴다. 그 노력이 허상하게도 내부는 한산했다. 둘러보니 한 커플과 젊은 여자 셋, 그리고 어린 학생뿐이다.

아직 아무도 안 온 건가? 빈자리에 가서 앉으려는 찰나 어린 학생이 정유에게로 다가온다.

“디텍터님? 저 스타쉽79예요.”

갑작스러운 인물의 등장에 당황한 정유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되묻는다.

“몇 살이에요?”

“17이예요. 고1”

‘우주에 관심을 가진지 16년 되었다는게 태어난지 16년이었단 말인가? 본투비 과학자라 이말이지...’

“아, 예.”정유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려 애쓰며 엉거주춤 그를 따라가 앉는다. 키는 성큼 큰 편이지만 그래도 얼굴은 앳되어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그래도 자칭 변호사라는 보이저2가 남아 있으니... 진짜 변호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변호사 행세를 할만한 행색으로 나타나겠지.

스타쉽79는 정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젊은 분일 줄 몰랐다며 말한다. 그는 사실 또래들과는 수준이 맞지 않아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 등을 하며 적의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전 우주항공 전공 하고 싶은데 아빠가 생명공학을 하라고 해서 고민이예요. 어렸을때부터 과학을 좋아해서 로봇, 행성관측, 코딩을 배웠는데 아무래도 우주 쪽이 제일 관심이 가더라구요.”

“난 그냥 알바하면서 공부하고 있어.”

“대학원생이에요?”

앞에 앉은 아이의 말보다 그의 말쑥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꾸미지 않은 듯 하지만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티셔츠 왼쪽 가슴에 박힌 로고, 리셀가가 붙어 수 십만원을 웃도는 운동화, 정유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띄며 그간 수많은 밤을 새며 함께 나눈 말들을 되짚어봤다. 결코 상대가 어린 소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회상하자 왠지 모르게 기만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양복 입은 나이 번듯한 변호사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길 바라고 있었다.

‘보이저2님, 저희 만났어요. 얼른 오세요. ’삼십분 전에 보낸 메시지가 미확인 상태였다.

‘어디쯤이신가요? 좀 늦으시네요?’

‘혹시 오늘 못 오시나요?’

쫄려서 도망갔나... ... 그러니까 변호사는 무슨 그딴 소리 안했으면 될걸.

“바쁜 일이 생기셨나 보죠. 사실 아무도 안 나오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하니까 새롭고 좋네요. 진작 한번 만날걸 그랬나봐요.” 눈치도 없이 조잘대던 스타링크가 갑자기 목소리를 죽여 말을 꺼낸다.

“형,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돼요. 진짜 몇 명 모르는 건데요. 그 살인사건, 분석관에 의하면 요즘 일어나는 살인사건들 그거 사람이 아닐 수도 있대요. 이거야말로 우리가 늘 말하던 지구 외 존재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 그래도 이건 그냥 덮어질 거예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탐정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저 적의 없는 눈빛, 생활의 찌듦이라곤 겪어본 적 없는 순수한 눈빛, 지루한 일상에 어떤 색다른 자극을 추구하고자 오컬트나 미신들을 파헤치는 단순 쾌락적 호기심에 정유는 울화가 치밀었다.

“외계인 같은 거 말하려는 거야? 한창 좋아할 때지. 공부 열심히 해. 너무 과학만 파지말고 국영수 골고루. 좋은 대학가야지.” 왠지 모를 냉소적인 말투가 새어나와 스스로도 놀랐다. 눈 앞의 커피를 들이켜 모두 마셨다. 그리고는 소년이 레모네이드를 다 마시길 기다렸다가 그를 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역시, 우리끼리 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보이저님도 안오시고. 나중에 카페에서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자.”소년은 아쉬워하며 카페를 나서는 정유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창가에 앉은 소년이 밖으로 나선 그를 바라보는 것이 얼핏 느껴졌지만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엔 지상의 화려한 불빛에 가리워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알바 시간이 한 시간가량 남아 정유는 정처 없이 그 불빛속을 헤맸다.

휘황찬란한 네온 속을 떠돌던 정유는 가장 익숙한 불빛,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세... 어, 정유 일찍왔네?” 유리문의 열림을 알아챈 점장이 반색하며 정유를 맞았다.

매번 폐기 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곤 하는 정유에게 점장은 아직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은 도시락을 건넸다.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많이 팔아달라고 몇 개 주더라고.” 챙겨둔 보따리에서 도시락 하나를 꺼내 놓은 점장은 서둘러 갈 채비를 했다.

“좀 일찍 가도 되지? 신선식품 너무 빨리 꺼내놓지 말고 시간 정확히 맞춰서, 야간은 일도 많지 않으니까 새벽에 주취자들 오면 어슬렁 거리지 않게 필요한 건 가져다 계산해줘서 빨리 보내. 유두리 있게, 알지?”

지난 소동을 알고 있는 점장은 정유에게 당부하며 나갔다. 마치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의 잘못인 마냥.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가 두고 간 도시락에 궁서체로 적혀있었다. 금색 띠를 두른 도시락은 꽤나 신경쓴 포장에 비해 내용물은 단촐했다.

9,500원. 다른 도시락의 두 배는 되는 가격이지만 구성은 비슷해 보인다. 간만에 집밥 같은 도시락을 앞에 두고 먹자니 왜인지 모르게 그 녀석이 생각났다.

평소 그의 말투와 지식으로 보아 79년생이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했는데 새파랗게 어린놈이라니, 변호사란 녀석은 또 뭐람. 허구한 날 반백수인 자기보다 카페에 죽 치고 있더니 만나기로 한 날 내빼고.

까만 깨가 뿌려진 계란말이를 보자 괜히 유리문 밑에 다닥다닥 붙은 벌레가 연상되어 입맛이 달아났다. 젓가락으로 깨를 훑어내고도 계란말이엔 입도 대지 않았다.

죽었다고 했다. 정유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7살, 그 이전에도 물어봤겠지만 아주 어릴 때 죽었다는 엄마는 그녀보다 오래전 죽었을 할아버지처럼 제사도, 묘도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정유라는 아이를 세상에 두고 연기처럼 사라진, 처음부터 그에겐 없었던 존재

정유가 아까 만난 소년 정도의 나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오래된 수첩에서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발견했다. 은행 계좌, 보험, 지방에 사는 삼촌 전화번호 같은 것만 적힌 수첩에서 동떨어진 페이지에 적힌 글자. 정유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과 연관된 사람 일거라는 것, 김지숙. 삐뚠 할머니의 필체로 눌러쓴 글씨는 바랜 수첩의 색과 함께 오래도록 그곳에 숨겨져 있었다.

서울시 강북구 남한동 127-9 세기아파트 103호

정유는 그 부분만 찢어서 챙겼다.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다만 바지 주머니에 그것을 넣고 다니며 가끔씩 꺼내서 그것이 엄마의 사진이라도 되는 양 들여다보았다.


과자코너 위 형광등 하나가 깜빡거린다. 이따 손님이 뜸해진 시간에 갈아둬야겠다 생각한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간다. 근처에 있는 몇몇 학원이 끝나는 시간이다. 삼각김밥, 컵라면, 핫바, 커피, 갖가지 간식을 계산하고 재잘대는 그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술에 취한 사람들의 시간.

꺅-꺄아악,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다. “뭐야, 우웩. 나 한입 먹었는데.”

한 소녀가 붉그락 푸르락 하며 헛구역질을 해댄다. 친구가 정유에게 다가와 따져 물었다.

“아저씨, 이거 전자레인지에 돌렸는데 이렇게 되어있어요. 청소를 어떻게 하신거예요. 쟤 벌써 한입 먹었다구요.”학생이 건넨 핫바는 반쯤 뜯어진 비닐 속에 러브버그가 낑겨 붙어 함께 익어있었다. 모락모락하게 익은 핫바와 새카만 벌레의 다리가 두드러져 정유가 보기에도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아, 그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면 다예요?” 여학생 네 명이 우르르 다가와 정유를 쏘아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유, 징그러워. 유정이 어떻게해.”

“그러게, 배탈이라도 나면. 내일모레 시험인데...”

“어떻게 해.” 친구들의 말이 그녀를 더 자극하는 듯 핫바를 먹었다는 여학생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정유는 급히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주었다.

“미안하다.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하는데 너희도 알다시피 이것들이 요즘 이게 워낙 난리잖아. 분명 좀전에도 확인했는데. 데우려고 문 열 때 들어갔나봐. 환불해줄게. 병원도 가보고.”

정유에게 대표로 쏘아대던 안경 낀 여학생이 돈을 낚아채며 정유를 으름장을 놨다.

“일단 소문은 안 낼게요. 병원 가보고 이상있으면 다시 올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여학생들은 정유에게 드리워진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팔짱을 끼고는 발랄한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사라졌다.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유는 자신의 지갑을 찾아 돈을 채워 넣고는 남겨진 핫바를 분리수거도 없이 일반쓰레기에 쳐넣었다.

매장 안팎으로 벌레를 처리하고 폐기를 처리하고 새 상품을 순서대로 진열하고 시재를 맞추고 박스를 내놓자 그의 일과가 끝났다.

퇴근길 여름이 슬슬 지나가려는지 해가 뜨는 것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저번 주만해도 이 시간엔 환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하게 사람이 없다.

‘아, 오늘 토요일이지’깨닫는다. 어스름한 길을 걷다 길 건너편에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는 것이 얼핏 보인다. 키가 이상할 정도로 크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다시 보니 벌써 정유를 지나쳐 한블럭 떨어진 모퉁이 골목길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작게 보인다. 어? 방금 길 건너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저렇게 빨리 갈 수가 있나?


집에 들어서자 여전히 소파에 모로 누워 자고 있는 아빠, 켜져 있는 티브이가 보인다. 바닥에 보이는 초록색 소주병 두 개를 집어 베란다에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선 파란 병들이 현대미술 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내다 버려야지 다짐한다. 일 년 전 퇴직을 한 아버지는 바깥세상에 출입 금지를 당한 사람처럼 집에서 티브이만 봤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집에서 놀고 있는 정유를 보고 그는 한심해했고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술로만 지새는 아빠를 보고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변변치 않은 삶에 얹혀사는 사람이 할 말이 있겠냐만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10년이 가깝게 둘에게는 서로 밖에 없었으면서도 둘은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지냈고 정유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2년 전부터는 서로가 거의 잠든 모습만을 보았다.

정유의 방은 암막 커튼 때문에 밤처럼 컴컴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네모난 휴대폰 불빛만이 깜빡이는 방, 이것마저 끄면 완벽한 어둠이다. 정유는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텅 빈 우주에 조난된 것처럼 외로워져 화면을 봤다. 외로움이 극에 달하자 무의식적으로 카페에 접속했다.

변호사와 starlink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 녀석이 피도 안 마른 애인지 모르겠지. 하긴 이 녀석도 그럴지도... 조소하며 휴대폰을 머리맡에 두고 애써 잠을 청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황홀하다. 둘은 재영의 차에서 썬루프를 열고 하늘을 바라본다. 어둠에 흩뿌려진 별들은 심장이 뛰듯 발광한다. 재영도 넋을 놓고 그 것을 눈에 담고 있다. 정유가 재영에게서 다시 밤하늘로 시선을 옮기자 재영이 갑자기 싸늘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는 늘 하늘만 보더라. 옆을 좀 봐.”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창밖에 다닥다닥 붙은 새카만 벌레들과 눈이 마주친다. 바깥은 밤이라 어두운게 아니라 검은 벌레들이 창을 가려서 어두운 것이다. 그들은 수천 수만 개의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재영을 바라본다. 그녀의 눈동자도 새카맣게 변한 채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악- 속으로 삼켜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뜬 정유의 베갯잇이 땀으로 흥건하다.

방에 있기 찝찝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얼마 만인지 모를 아버지의 깨어있는 얼굴을 마주했다. 잠들었을 땐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푸석했고 정유가 생각하는 것 보다 몇 년은 더 늙어 있었다. 깎지 않은 희끗희끗한 수염 때문이리라. 초췌한 몰골로 그는 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따 올 때 소주 좀 사다 놔라”

“네” 며칠 만의 짧은 대화였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지난주 발생했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아직 검거되지 않은 채 비슷한 사건이 성북구에서 다시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5층에 거주하는 60대 부부로... ... 그들은 지난 7일 발생한 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피살당했음이 드러났습니다... ...

정유는 연거푸 물만 마시고 방으로 들어갔다. 물맛이 썼다. 올해는 유례없는 폭염과 살인사건으로 세상이 혼란했지만 정유의 세상만은 고요했다. 가끔 찾아오는 주취자와 성가신 벌레를 제외하고는... 뉴스를 신경 쓴 탓인지 요 며칠 거의 손님이 오지 않았다.

저녁이어도 끈적한 더위는 계속되었다. 종일 뜨겁게 달구어낸 아스팔트에서는 태양의 빈자리를 대신이라도 하듯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더위에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던 정유의 눈에 편의점 앞에서 폐지 노인과 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리라. 점장이 따끔하게 이야기해 다시는 이 편의점에 오지 않기를 바라며 정유는 편의점으로 다가갔다.

“아유, 점장님. 저야 늘 감사하죠.” 노인은 아들뻘 되는 점장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냥 들어가려는 정유를 점장이 불러세우며 말했다.

“정유야, 폐지 내놓는거 너 퇴근하기 전에 5시 전에 내놔라. 그러면 좋으실 것 같단다.”

정유가 대답이 없자 점장이 채근했다.

“그 시간에는 식품진열이랑, 시재 맞추고 할 일이 많은데... ...”

“정리는 미리 해뒀다가 시간 맞춰서 내놓기만 하면되지. 어르신이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알았어?”

“네.” 말을 내뱉고 서둘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고맙습니다. 점장님.” 정유의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바탕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고 야외 파라솔을 정리하러 나섰다. 금색의 띠지가 테이블과 휴지통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고 바람에 휘날렸다. <-먹는 것이 당신입니다>

‘아씨, 어떤 놈들이야.” 아까 왔던 말쑥한 회사원이 예닐곱 개 계산했던 것 같은데... 씨발’정유는 끈적한 스티커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몇 시간이 지난 터라 휘날리는 끈끈이 부분에는 벌레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개중에는 아직도 다리를 꼼지락 거리는 것들도 있었다.

‘망할 새끼들. 나이깨나 먹고 이딴 짓을... ’

정유는 요즘 사람이 싫어졌다. 벌레만큼이나.

그때부터였을까. 이 주전이었나. 뒷모습이 낯익은 실루엣이었다. 누구더라, 빤히 보는 순간 지성과 눈이 마주쳤다. 정유보다 더 당황하는 지성과 그를 버린 채 황급히 편의점을 나가는 여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지성을 향해 억지 미소를 짓던 정유의 얼굴이 굳었다. 이런 식의 재회는 바라지 않았지만 아마도 더 당황한 쪽은 그 쪽 인 듯 싶었다.

“아, 저 잘 지냈어?근처에 놀러 왔다가 살게 있어서 잠깐 들렀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얼마 만이냐. 반갑다.”지성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횡설수설했다. 애초에 두리번대던 주류코너에서 정유에게 다가와 어색한 인사를 건네던 그는 계산대 앞에 놓여진 치실을 덥석 집어 들고는 다음에 보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사라졌다.

지성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았다. 한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따라오는 초라함과 부끄러움이란.

뭐 더 쪽팔릴 일이 있나... 하지만 정유의 머릿속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뛰쳐나가던 여자의 모습이 깊이 남았다.

짤랑짤랑-

종소리가 짧게 울렸다. 열두 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정유는 신문기사를 보고 있었다. 또다시 발생한 살인사건에 관한 속보, 이번에는 13층이었다. 창문이 반쯤 열려있던 집. 출입흔적은 열려진 창문외에는 없었다.

‘13층이라고?’ 순간 스타링크, 그 소년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존재일지도 몰라요’

에이,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겠지... 신문 기사를 다 읽고 난 뒤 손님을 보았지만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종소리를 들었는데...

섬뜩한 마음에 다시 한번 구석구석 눈으로 내부를 훑었다. 신선식품, 생필품, 라면코너, 과자, 음료수 매대 뒤편에 혹시 누군가 있을까 싶어 CCTV로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밖을 바라보니 유리문 밖에 얼핏 키가 아주 큰 사람이 서 있는 듯했다.

새카매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이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세히 보려 허리를 기울여 내다보니 어딘가로 사라져 있었다.

짤랑짤랑, 다시 종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밖에는 강풍이 불고 있었고 문이 흔들리는 틈을 타 벌레들이 틈새로 여럿 날아 들었다.‘태풍이 온다고 했었나?’종소리가 바람 임을 확인한 정유는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선득해진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페에 접속했다.

[voyager2] 오, 코스모스 오랜만이에요.

변호사 녀석이 왠일로 반갑게 느껴졌다.

[cosmos detector] 네, 잘 지내셨나요?

[voyager2]이래저래 바빴어요. 저번에는 미안했습니다. 급하게 맡게 된 공판이 생겨서 준비하느라 밤을 좀 샜습니다. 그랬더니 약속 시간도 잊고 잠들어 있었네요. 다음엔 꼭 참석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요 며칠 안 오신 동안 조사한 바가 많아요. 아직 가설이긴한데, 이 살인사건 말입니다. 범죄자료도 많이 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이건 조직이라고 해도 쉽지않다구요. 저층일때는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데 5층, 그리고 13층까지 가는 마당에 점점 제 생각에 확신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cosmos detector] 저... 혹시 안 주무실거면 대화 좀 해도 될까요.

[voyager2] 네 그래요. 편하게 말하세요. 아무래도 우리 중에 제가 제일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요? 코스모스님은 왜 이 카페에 빠져사시나요?

[cosmos detector] 처음엔 다른 남자애들처럼 그냥 호기심이었어요.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불행한 것 같더라구요. 우주를 생각하다보면 모두가 하잘것없이 느껴져서 좋아요. 결국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아둥바둥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생각도 들고요

[voyager2] 불교적 허무주의네요. 그래도 인간인 이상 주어진 삶은 제대로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요..

[cosmos detector] 그런가요, 그럼 보이저2님은요?

[voyager2] 좀 지루할텐데... 그래도 들어보실래요?

[cosmos detector] 네, 오늘 시간 많습니다.

[voyager2]전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집이 잘살지 못했지만 머리 하난 좋아서 시골마을에서 영재로 소문날 정도였거든요. 내 자랑 같지만... 한창 우주에 관심이 쏠리던 때였거든요. 티비에서 로켓 발사 하는게 최대이슈고 미국도 못가보는 시대에 달나라에 간다니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때의 나는 내가 우주비행사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몰라서 가능한 꿈이었죠.

공부를 덜 잘할걸 그랬나봐요. 줄곧 1등만 하던 저는 어려서부터 법대로 진로가 정해져 있었죠. 농사지어 시장가 팔아 자식공부시키는 부모가 그때 고시만 합격하면 집안 아니 가문의 출세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쩔 수 없이 죽어라 공부했죠. 성공적으로 효자도 되었고 장가도 갔는데, 두 분 다 돌아가시고 나니 내 삶이 뭔가 싶어요. 이젠 자식들 때문에 돈 벌어야지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머리는 듬성듬성 빠지고 배는 나오고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구요. 그게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사무실 따로 차리고는 더 힘들었지 매일같이 영업하고 야근하던 어느 날 출근길에 쓰러졌어요. 큰 병인가 싶었을 땐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했구요. 그런데 몸은 생각보다 엄청 건강하대요. 우울증이라네요. 집사람은 제게 갱년기라고 했지요.

약을 먹으니 견딜만했어요. 무뎌졌다고 해야 하나, 슬플 일도 없지만 기쁜 일도 없이 그렇게 평소같이 일하고 주말에는 드라이브도 하고 명품도 사고 그랬어요.

어느 날 밤에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 봤는데... ... 마침 그날이 슈퍼문이 뜬 날이었어요. 평소라면 시끌벅적한 거리가 고요했어요. 마치 낯선 행성에 홀로 있는 것처럼... 컴컴한 어둠 속에 홀로 빛나는 그 달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뭐랄까, 마치 그달이 나 같았달까. 오랫동안 외면했던 진짜 나, 컴컴한 고요 속에 방치된 채 잊고 지냈지만 부정할 수 없는 내가 묵묵히 그곳에 있었던 거예요.

그리곤 이 카페를 찾았죠. 나는 땅에 발붙이고 살지만 하늘을 봐야하는 놈이구나. 지금도 우주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요.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돈을 벌어야 하지만요.

[cosmos detector] 대단하세요. 그에 비하면 전 그냥 현실 도피 같아요. 앞으로 뭘 할지 막막하고 할 수 있을지도 사실 모르겠거든요. 저기... starlink79말이에요. 아직 고등학생이더라구요.

속의 말들을 털어놓자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어 정유는 starlink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라는 것을 털어놓았다.

[voyager2] 정말요? 와, 그런 친구가 벌써 그렇게 잘 안단 말이에요. 조금 샘나는데요.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의외로 보이저2는 starlink의 나이에 관심이 없는듯했다.


정유가 조심스레 말했다.

[cosmos detector] 사실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까 말했다시피 하나의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웜홀까지 연계해서 보고 있어요.

[voyager2] 그것보다는 지구의 자전 축 이상으로 발생하는 핵의 균열 때문 아닐까요. 유리를 통과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네요. 어떤 생물체의 소행이라기보다는 아직 밝혀지지 못한 물질의 작용이요. 언론에서 어떤 식으로 죽었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범행 무기가 미정이라고 하는걸 봐도 왠지 그 부분이 의심되네요

아까와는 달리 사뭇 사무적인 투로 변호사가 정유의 의견에 반박했다.


[cosmos detector] 그것도 좋은 지적이긴 하나, 그렇다면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에게 발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혹은 최근에 출현한 러브버그 사건과 연계가 있을지도요. 정유는 요 몇 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러브버그와 살인사건에 대해 그럴싸한 가설을 만들어 보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냈다.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까 봤던 펄럭이던 금색 띠가 생각났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입니다>

이것 보세요.

-러브버그들의 먹이는 식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기사를 들며 들짐승의 죽은 사체, 곤충의 사체 등에서 체액을 빨아먹으며 그 사체에 알을 낳기도 한다. 대체로 성충까지의 성장은 3-4일이면 완성된다. 그러한 짧은 생식 주기로 인해 돌연변이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보이저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voyager2] 그렇다면 그 생물이 섭취한 생물의 특성을 가지는 돌연변이라는 겁니까? 개나 토끼나 사람이나 그들에겐 그저 단백질일 뿐인걸요. 러브버그는 기상이변으로 발생한 하나의 생태계 교란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만, 지금은 멸종한 나그네비둘기처럼요.


신빙성이 부족한 가설이지라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보는 것이 탐구의 지향점라고 생각하는 정유와는 달랐다. 조금은 공격적이기까지 한 그의 반박에 정유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렇게 꽉 막힌 시선으로 새로운 발견을 논하다니... 일종의 직업병이려나.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지금의 정유의 앞에는 100원의 오차도 없이 맞춰야 할 시재와 유통기한 임박 순으로 앞에서 뒤로 차곡차곡 쌓여야 할 신선식품이 두 박스 놓여있다.

[cosmos detector]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얼른 주무세요. 내일 피곤하시겠어요. 오늘 대화 감사합니다. 눈앞의 일들에 떠밀려 급히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voyager2]내일 사무실에서 쪽잠 자죠. 이 정도 밤샘은 단련이 되어있어 괜찮습니다. 허허. 간만에 코스모스님을 만나 제가 좀 흥분한 것 같네요. 별소리를 다하고... 편히 주무십쇼.

확실히 지식도 많고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있어서는 고지식하리만큼 굽히지 않는 것이 흠이다. 어차피 과학의 전 단계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의 제시 아닌가? 보이저는 정유의 의견이 너무 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난번 말했던 지구공동설도 그렇지 않은가? 진짜 변호사는 맞긴 한건가?’ 생각할수록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이번만큼은 자신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먼저 자신의 가설을 정리해 봐야 했다. 여지껏 본 이상 개체 생명체와 견주어 보아도 러브버그는 이상하리만치 증식했다. 마치 생식이 아닌 분열하는 것처럼.

천적이없다? 생식주기가 짧다? 생김새는 익숙하지만 아무래도 이질적이라는 것, 생각할수록 정유의 강한 촉이 이건 기존의 곤충과는 다른 종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동틀 무렵, 평소라면 어스름하게 사위가 밝아질 시간임에도 밤처럼 컴컴했다.

교대 시간은 다섯 시지만 이십 분이 지나도 점장은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해 볼까 하다 이내 조금만 더 기다리자 생각했다.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다. 밤에는 모래사장의 모래알처럼 문에 붙어 있던 벌레 녀석들은 동틀무렵이 되면 어디 가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죽은 사체만 겨울 앞의 낙엽처럼 나뒹굴 뿐. 그때 무언가 재빨리 스쳐 지나갔다. 펄럭거리는 모양새는 검은 봉지가 바람에 휘날려간 것 같았지만 얼추 사람만큼 커다란 형체였다.

간밤의 오싹한 기분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짤랑짤랑 종이 울렸다.

흠칫 놀란 정유에게 점장이 말했다.

“미안, 조금 늦었네. 어두워서 늦잠 잔 것 있지. 바람이 엄청 불어. 태풍이 비켜간다고 하더니.”

“점장님, 방금. 뭐 지나간 거 못 보셨어요? 바로 전에”

“뭐? 아무도 없었어. 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쓰레기가 엄청 날려. 얼른 퇴근해. 별일 없었지?”

“네.” 정유는 간밤의 검은 형체에 대해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관두었다. 역시 바깥으로 나오자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날씨 때문인지 조깅하는 사람도 없고 몇몇만이 거센 바람을 견뎌내며 걸었다. 그들의 머리카락이 동서남북으로 휘날렸다.

새벽의 엘리베이터는 한산하다. 그렇다고 불까지 깜빡거릴 일이야.

집에 들어섰다. 여느 때처럼 티비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소주병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커튼이 닫혀 있어 동틀 무렵이라도 사위가 한밤처럼 컴컴했다. 정유는 곧 소파에 늘 누워있던 아버지의 부재를 눈치챘다. 방에 가서 주무시려나 생각했지만 묘한 불안이 엄습했다. 아무리 취해도 이렇게 소주병을 나뒹굴게 해놓다니.

병을 주워 가지런히 세워두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순간 찢어진 방충망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보니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은 소주병뿐만이 아니었다. 건전지가 분리된 리모컨, 깨진 시계, 유리컵.

“아빠” 다급히 외쳤지만 말라붙은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는 쉰 소리 뿐이었다. 곧이어 아버지의 방에서 천천히 나오는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터 남짓한 커다란 형체의 고글을 쓴듯한 커다란 눈을 굴리며 정유를 바라보는 존재의 손, 아니 칼날 같은 앞다리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벌레. 정유 앞에 무력하게 우수수 떨어지던 그것들, 익숙한 듯 쓸어내 버리던 수 많은 사체와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만큼 큰 그 위압적인 크기를 제외한다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유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만큼 깊은 쾌감을 느꼈다. 이 순간 정유는 무엇보다 변호사의 반응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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