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영성장에세이
엄마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엄마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잘 모른다. 이것이 사실이다. 엄마는 약 10년 전쯤 뇌수술을 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뇌 앞부분 혈관이 부풀어 급하게 수술을 했다. 그렇게 발견된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모두들 말했다. 엄마의 수술 날 나는 지방 어디쯤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수술 날이지만 하루에 3개의 강의를 해야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의 수술 날.
나는 엄마가 수술했던 당일 병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그다음 날 병원에 갔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가 일반 병실에 와 있었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멍한 채로 앉아있었던 것 같다. 붕대를 천천히 풀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조카는 엉엉 울었다. “할머니 죽으면 어떡해.”라고 말하는 그 울음에 우리 모두의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고 앞이마 중앙에서부터 왼쪽 귀 위까지 절개한 흔적이 아주 진했다. 그 상처를 스테플러 같은 것으로 촘촘하게 집어 놓은 것을 보았다. 보는 내내 내 머리의 같은 부위도 따끔 따끔 했다.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엄마의 상처는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날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돌아가면서 엄마 병간호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냥 아빠에게 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엄마는 분명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데 왜 저렇게 누군가에게 완전히 내 몸을 의지해야 할 때 아빠를 선택할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병원에 조금 있다가 병원 안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가? 먹지 않았던가. 아….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그 일 이후로 엄마는 건강을 더욱 챙기게 되었다. 수술 후유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시신경 혈관이 자꾸 좁아진다고 했다. 언니들은 엄마 눈에 좋다는 것을 공수해서 보내준다. 엄마는 인공누액을 눈에 수시로 넣는다. 언젠가 울보인 우리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눈도 이렇게 안 좋은데 자꾸 눈물이 나면 눈에 얼마나 안 좋을까?”
엄마의 말에 내가 이렇게 말했다.
“눈물을 흘리면 눈에 안 좋다고 병원에서 그래?”
그랬더니 아니란다.
“눈물이 나면 엄마 눈에서 나쁜 게 빠져나가고 더 건강해질 거야.”
엄마가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건강을 염려하면서 불안해하는 걸 오래 봐 왔다. 나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엄마보다 더했을지 모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가 말했다. 아무리 딸이고 아들이고 자식들이 있어도 제일 편한 건 남편이라고. 난 이 말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왜 있잖은가. 학교 다닐 때 맨날 나한테 A친구 뒷담화를 늘어놓던 B가 어느 날 나를 뺀 채 A와 팔짱을 끼고 시시덕거리면서 내 앞을 지나가는 광경을 봤다고나 할까. 일종의 배신감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아직도 잘 이해하고 싶지 않다.
곧 엄마의 생신이다. 내일인가. 엄마의 눈을 위해 온열 기능이 있는 일회용 눈 안대를 몇 번 주문했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는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온열 안대를 샀다. 잘은 몰라도 엄마가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뭘 사주는 건 소통할 줄 몰라서다.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줄 방법을 몰라서 장난감을 사주듯 자식들도 부모와 서로 대화하고 뭔가를 살갑게 할 줄 모르기에 뭐라도 안기는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아니다. 섣부르게 단언하지 말자. 그렇지만 지금 현재 나에게는 이게 맞는 것 같다. 갑자기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걸 보니 말이다. 그 기계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마디가 오간다.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주변에 작가가 있다면, 그것도 친하다면 몹시 경계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처럼 이렇게 관찰하고 써대니 이거 대단히 무서운 일이잖은가.
#나는엄마를모른다 #엄마를통해나를본다 #고선영성장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