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미안해요

고선영성장에세이

by 작가 고선영

나의 결핍은 글을 쓰는 원천이 된다. 나의 자격지심도, 불안도, 두려움도 글을 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한때 그것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글감이 된다. 산에서 땔감을 줍는 것처럼 나의 속을 헤집고 글감을 줍는다. 엄마에 대한 생각을 짧게 정리하고 있다. 이 글과는 또 무관하게 쓰고 있다. 엄마를 위로하는 그림책을 쓰고 싶다. 그 책은 우리 엄마에게 바치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송민혜에게’ 이렇게 쓸까? 그 생각으로 맘이 설렌다. 그러나 정말 잘 써야 한다.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보드라운 그림책이면 좋겠다. 그런데 떠오르는 걸 적어보니 우리 엄마를 또 울릴 것 같아서 겁이 난다. 그래도 이 일은 나에게 큰 재미와 의미를 준다.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충분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을 담아야 쓸 수 있다. 조사를 좀 해야겠다. 외삼촌은 계속 외할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외할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이 생각은 두 번 바뀌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했다 하더라도 목숨을 타인에게 빼앗길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고 해서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우리 외할아버지는 계속 공부를 했고 그 공부한 것을 사회에 적용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계속 연설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사상을 계속 전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나도 강의를 한다. 감정디자인이나 감정라이팅 또는 그림책이나 독서 등의 주제로 무대에 선다. 때때로 남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질 때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똑똑한 청년이었다고 했다. 말도 잘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대대로 전해오는 ‘피’를 떠올린다. 그럼 없던 용기가 차오른다. 이런 생각이 들면 나도 외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뭘 하는 것이 좋을지 정답은 모르지만 수많은 실행은 떠오른다. 이럴 때 스스로 비겁하다고 느낀다. 어려울 때는 할아버지에게 기대면서 외할아버지의 황망한 죽음 앞에서는 굳게 입을 닫는 것이다.


‘할아버지 미안해요.’


오늘 우리 책방 근처에 있는 큰 목련이 있는 벽돌집을 지나치다 알게 되었다. 목련의 겨울눈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그 겨울눈을 사진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몸을 틀며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그런데 오늘은 안 보인다. 아무래도 주인이 그 목련 나무를 벤 모양이다. 그 일로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 목련을 보면서 힘을 많이 얻었기 때문이다. 나도 목련처럼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목련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목련 이야기로 샌 것은 우리의 조상은 나무와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생을 다하고 또 자손을 퍼뜨린다. 그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유전자 정보가 담긴 제2의 나와 제3의 나를 계속 퍼뜨리는 것.


사노 요코(사노 요코를 좋아한다)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에는 태어나기 싫었던 아이가 나온다. 나에게는 외할아버지의 유전정보가 담겼고, 우리 친할아버지의 유전정보도 담겨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 내 유전자 정보를 어디에 남기고 싶지 않다. 그냥 지구에서 나 하나로 살고 죽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담백하다고 느껴진다.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정말 깊이 와 닿았다. 나랑 닮은 아이를 마주한다면 어떨까 때때로 상상해 본다.


아!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상상을 자주 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을 차곡차곡 꾸준히 파 내려가면 내가 서 있는 반대쪽 지구에 나랑 똑같이 생긴 아이가 존재할 거라고 말이다. 인종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외모도 닮았고 생각도 똑같은 아이. 그런 아이가 꼭 있을 것 같았다. 그 아이를 자주 생각했다.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를 그려본다. 내 뿌리를 가만가만 더듬어본다. 나의 현재에 답이 있겠지 하고 말이다. 나는 우리 엄마를 위로하는 그림책을 반드시 쓰겠다. 이건 나를 향한 정확하고도 완곡한 명령이다. 나는 반드시 써야만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반드시 써야 한다. 이건 내가 꼭 지켜야 할 일이다. 분명히 엄마를 사랑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채근해 줄 거라고 믿는다. 아빠들은 대개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말이다. 외할아버지는 눈물로 나에게 아이디어를 줄 것이다. 본인 때문에 딸이 이른 해를 울고 있으니까 나에게 한 번쯤은 신호를 보낼 거라고 믿는다.


암.





| 엄마 인터뷰 7

우리 아버지께서는 내가 생후 20개월만에 전주 형무소에서 사형 당하시고 나는 47년 2월 29일에 태어났고 음력으로는 (2월 5일)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사진도 아버지께서 순경들이 잡으러 다니니 사진도 집에 있는 사진은 다 태워서 사진 한 장 없었는데 우리가 자라면서 국민 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 2년 후배시라면서 우리 아버지 사진 두 장을 찾아주셨는데 72년 8월 23일 도림동에서 살 때 대성연탄 공장 뚝이 터지면서 물난리로 그 사진마저 잃어버렸다. 우리는 아버지 얼굴조차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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