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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Apr 06. 2020

오른손이 불쌍해

왼손 너는 입 닫아.

나는 아주 철저한 오른손잡이이다. 그래서 왼손으로 무언가를 하려다가도 조금 정교함이 요구된다 싶으면 바로 오른손으로 바꿔 잡는다. 그래서 오른손은 늘 일을 하고 있다. 가끔은 오른쪽 손목이나 손가락, 팔도 저릿해질 때가 있어서 이럴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너무 부려 먹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갑자기 내가 오른손에 주었던 모든 일을 죄다 또 왼손에 퍼붓는다. 그럼 오른손은 이제 시간이 생긴다. 왼손은 주구장창 쏟아지는 일에 놀라서 이것저것을 정신 차리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스몸비(스마트폰에 중독된 좀비를 뜻하는 말)인 내가 왼손으로 스마트폰님을 들고 있다손 치더라도 구체적인 터치며 Qwerty 자판을 치는 건 무리다. 조금 애써보다가도 어느샌가 '에잇~' 소리가 절로 난다. 결국 또 오른손이 등판.



내 입장에서는 오른손이 늘 불쌍하다. 음식을 만들 때도, 글씨를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핸들을 잡을 때도 늘 오른손이 정이고 왼손은 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왼손은 왼손대로 판판히 논다고 좋아할까? 분명 왼손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100가지도 넘게 줄줄 읊어댈지도 모른다. 또는 자기는 일을 안 줘서 능력이 개발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원래 능력에 대해 흰소리를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왼손과 오른손에 대한 나의 생각은 늘 부모들이 첫째 아이, 둘째 아이에게 가지는 생각만큼이나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어릴 적 동화처럼 마무리하려고 한다.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끝내려고 한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둘이 있는 이유. 안타깝게 손이 하나뿐이거나 아예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둘이 있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아 슬프다.

방금 병원에 다녀왔다. 정형외과.

오른쪽 손이 문제겠거니 했더니 어깨가 문제다.

오른쪽 어깨에 석회화가 진행되고 상당히 굳었단다.


나는 할 일이 많은데...

제발...

병원에서 어깨에 주사를 놔주는데 그만 비명을 질렀다.

(나는 주사기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극도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오른손을 당분간 왕이라도 된 것처럼 알아 모셔야겠다.

손뿐 아니라 어깨도.


왼손으로 그린 나무





2020.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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