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플러
#14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4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많이 알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잘 모른다. 이것이 사실이다. 엄마는 약 7년 전쯤 뇌수술을 했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뇌 앞부분 혈관이 부풀어 급하게 수술을 했다. 그렇게 발견된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들 했다. 엄마의 수술 날 나는 김포 어디쯤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수술 날이지만 하루에 3개의 부모교육 강의를 해야 했다. 회사를 완전히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회사와 무관한 선택이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날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의 수술 날.
나는 그날 엄마의 병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그 다음날 병원에 갔었는지가 잘 기억이 안 난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보니 엄마가 일반 병실에 와 있었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멍한 채로 앉아있었던 것 같다. 엄마의 붕대를 천천히 풀었을 때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우리 조카는 엉엉 울었다. “할머니 죽으면 어떡해.”라고 말하는 그 울음에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의 감정이 고조되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는 머리카락을 모두 밀었고 앞이마 중앙에서부터 왼쪽 귀 위까지 절개한 흔적이 아주 진했다. 그 상처를 스테이플러 같은 것으로 촘촘하게 집어 놓은 것을 보니 보기만 해도 아픈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엄마의 그 상처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날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돌아가면서 엄마 병간호를 하겠다고 말이다.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머리를 저었다. 그냥 아빠에게 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선택이 몹시 이상하다고 느꼈다. 엄마는 분명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데 왜 저렇게 누군가에게 완전히 내 몸을 의지해야 할 때 아빠를 선택할까. 내가 보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만큼이나 엄마는 이상해 보였다. 우리는 병원에 조금 있다가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던가. 먹지 않았던가.
아... 인간의 기억이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그 일 이후로 엄마는 계속 건강을 더욱 챙기게 되었다. 수술 후유증인지 같은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시신경 혈관이 자꾸 막힌다고 했다. 언니들은 엄마 눈에 좋다는 것을 공수하고 보내준다. 엄마는 수시로 인공누액을 눈에 넣는다. 언젠가 울보인 우리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눈도 이렇게 안 좋은데 자꾸 눈물이 나서 눈에 얼마나 안 좋을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눈물을 흘리면 눈에 안 좋다고 병원에서 그래?”
그랬더니 아니란다.
“눈물이 나면 엄마 눈에서 나쁜 게 빠져나가고 더 건강해질 거야.”
엄마가 이 말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건강을 염려하면서 더욱더 집착하듯 그 속에 빠지는 걸 봐 왔다. 그러나 나도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엄마 못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가 말했다. 아무리 딸이고 아들이고 자식들이 있어도 제일 편한 건 남편이라고. 난 이 말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왜 있잖은가. 학교 다닐 때 맨날 나한테 A친구 험담을 늘어놓던 B가 어느 날 나를 빼고는 A와 팔짱을 끼고 시시덕거리면서 내 앞을 지나가는 광경을 봤다고나 할까. 약간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아직도 잘 이해하고 싶지 않다.
아! 오늘 내가 하려고 한 말은 곧 엄마의 생신이다. 내일인가. 엄마의 눈을 위해 온열 기능이 있는 눈 안대를 몇 번 주문했었는데 며칠 전에는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충전식 온열 안대를 샀다.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자식들이 부모에게 뭘 사주는 건 소통할 줄 몰라서다. 부모가 아이들과 놀아줄 방법을 몰라서 장난감을 사주듯 자식들도 부모와 서로 대화하고 살갑게 뭔가를 할 줄 모르기에 뭐라도 안기는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아니다. 나에게는 이게 맞는 것 같다. 갑자기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기분이 드는 거 보니 말이다. 그 기계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몇 마디가 오간다.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주변에 작가가 있다면, 그것도 친하다면 몹시 경계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처럼 이렇게 관찰하고 써대니 이거 대단히 무서운 일이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