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그렇고말고!
#13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3
나의 결핍은 글을 쓰는 원천이 된다. 나의 자격지심도, 불안도, 두려움도 글을 쓰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한 때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의 글감이 된다. 엄마에 대한 생각을 짧게 정리하고 있다. 이 글과는 또 무관하게 쓰고 있다. 엄마를 위로하는 그림책을 쓰고 싶다. 그 책은 우리 엄마에게 바치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송민혜에게”
이렇게 쓸까? 그 생각으로 맘이 설렌다. 그러나 정말 잘 써야 한다.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보드라운 그림책이고 싶다. 그런데 떠오르는 걸 적어보니 우리 엄마를 또 울릴 것 같아서 겁이 난다. 그래도 이 일은 나에게 큰 재미와 의미를 준다.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삶은 한국 현대사와 맞닿아있다. 그러니까 내가 충분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감성을 담아야 쓸 수 있다. 조사를 좀 해야겠다. 외삼촌은 계속 외할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외할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다.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다고 해서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우리 외할아버지는 계속 공부를 했고 그 공부한 것을 사회에 적용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계속 연설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사상을 계속 전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나는 가끔씩 남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질 때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똑똑한 청년이었다고 했다. 말도 잘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대대로 전해오는 ‘피’를 떠올린다. 그럼 없던 용기가 차오른다. 이런 생각이 들면 나도 외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뭘 하는 것이 좋을지 정답은 모르지만 수많은 실행은 떠오른다. 나는 이럴 때 조금 비겁하다고 느낀다.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재능을 아주 조금이라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외할아버지의 황망한 죽음 앞에서는 굳게 입을 닫는 것이다.
“할아버지 미안해요.”
오늘 우리 책방 근처에 있는 큰 목련이 있는 집을 지나치다 알게 되었다. 목련의 겨울눈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나는 그 겨울눈을 사진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몸을 틀며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그런데 오늘은 안 보인다. 아무래도 주인이 그 목련 나무를 벤 모양이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실망을 준다. 나는 그 목련을 보면서 힘을 꽤 얻었기 때문이다. 나도 목련처럼 누군가에게는 힘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목련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목련 이야기로 샌 것은 우리의 조상은 나무와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무는 묵묵히 자신의 생을 다하고 또 자손을 퍼뜨린다. 그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유전자 정보가 담긴 제2의 나와 제3의 나를 계속 퍼뜨리는 것.
사노 요코의 그림책 ‘태어난 아이’에는 태어나기 싫었던 아이가 나온다. 나는 외할아버지의 유전정보가 담겼고, 우리 친할아버지의 유전정보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내 유전자 정보를 어디에 남기고 싶지 않다. 그냥 지구에서 나 하나로 살고 죽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담백’하다고 느껴진다. 담백하다는 뜻은 [1.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2. 아무 맛이 없이 싱겁다. 3. 음식이 느끼하지 않고 산뜻하다.]이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 사노 요코의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정말 깊이 와 닿았다. 옛날에는 나와 똑같은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서워서 종족번식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저 그보다 한 없이 낮아진 마음이다. 나랑 닮은 아이를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때때로 상상해 본다.
아!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상상을 자주 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땅을 차곡차곡 꾸준히 파내려가면 내가 서 있는 반대쪽 지구에 나랑 똑같이 생긴 아이가 존재할 거라고 말이다. 인종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외모도 닮았고 생각도 똑같은 아이. 그런 아이가 꼭 있을 것 같았다. 그 아이를 자주 생각했다. 그 아이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를 그려본다. 그 뿌리를 가만가만 더듬어본다. 나의 현재에 답이 있겠지 하고 말이다. 나는 우리 엄마를 위로하는 그림책을 반드시 쓰겠다. 이건 나를 향한 정확하고도 완곡한 명령이다. 나는 반드시 써야만 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반드시 써야 한다. 이건 내가 꼭 지켜야 할 일이다.
분명히 엄마를 사랑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를 채근해 줄 거라고 믿는다. 외할아버지는 눈물로 나에게 아이디어를 줄 것이다. 본인 때문에 딸이 칠십 년을 울고 있으니까 나에게 한 번쯤은 신호를 보낼 거라고 믿는다.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