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라! 엄마
#12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2
방금 내가 힘이 빠졌을 때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하는 친구와 통화를 마쳤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못 만나는 친구들은 대개 엄마라서 그렇다. 엄마는 죄다 바쁘다. 엄마인데 너무너무 여유 있는 엄마를 본 적이 없다. 엄마들은 언제나 시간이 없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자기와 아이를 위해 그 시간을 쪼갠다. 그래서 엄마들은 바쁘다.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이제 우리 나이 탓인가 자꾸 건강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엄마들은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자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것에 있어서는 맹렬하게 싸운다. 몇 년 전에 또 다른 엄마인 우리 언니는 학교의 석면 문제로 자신의 입장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엄마들은 어떤 면에서 투사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다. 엄마들은 자신의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을 내놓는 일도 불사하는 것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에는 예술제에서 1등이 되라며 친구를 죽여서라도 이기라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실제로 그런 엄마가 있을까? 드라마니까 더 더 자극적인 대사들이 오갈지 모르지만 어쩌면 저런 엄마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자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경쟁 사회에서 2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또 3위권에도 들지 않는 아이들은 어떨까. 연일 매스컴에서 ‘학폭’에 대해 떠들어댄다. 최근에 본 영화 속 주인공으로 나왔던 한 배우는 ‘학폭’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얼굴만 봐서는 절대 그런 행동을 했을 것 같지 않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다. 진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붙인 딱지를 나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뒤늦게 밝힌 그 배우의 글을 읽고 오히려 진실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뇌가 피로를 느낀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나는 초반에 쏟아지던 기사와 글로 벌써 한 편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이다. 그 일은 옳지 않다.
나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 나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하나만 키우는 것도 벅차다. 그런데 아이를 키운다면(왜 안 키운다면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이 생각을 물고 늘어져봐야겠다.) 방목하겠다고 생각했다. 간섭하지 않겠다. 최대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엄마한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생각했던 것이 있다. ‘맞고 싶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친구가 엄마한테 나무 빗자루 손잡이로 두들겨 맞는 걸 보면 어쩐지 저것이 진정한 가족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친 생각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서 아이가 생긴다면 잘못한 것은 때려서라도 알려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생각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엄마가 될 자신이 없다.’이다. 좋은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서 몇 시간이고 떠들어댈 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언젠가 사주를 봤는데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완전히 바뀝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이 말은 맞는 말 같다. 그러나 나도, 길에서 마주친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말이다. 아이를 낳으면 인생이 바뀐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은 대부분 흘러가지 않지만 자녀가 생기면 더욱더 그렇다. 오늘은 오전 시간을 놓쳐서인지 흐름이 자꾸 끊긴다.
나는 용기 있는 많은 여자들을 응원한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되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자의로 되었던 타의로 되었던 엄마는 진짜 존경스러운 존재다.
오늘은 최초로 우리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하고 엄마에 대해 쓴다. 엄마는 존경해야 마땅하다. 나는 아직도 그럴 용기는 나지 않지만 대신에 엄마들을 앞으로도 응원하겠다. 엄마들이 하는 일을 돕고 또 엄마들에게 힘을 주겠다.
지구에 사는 모든 엄마들을 찬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