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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고선영 Mar 16. 2021

또 눈물바람

#17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17 엄마를 위한 글쓰기 30일


#작가고선영 #엄마를위한글쓰기30일 #17


  아침밥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는 또 눈물 바람이다. 나도 모르게 또 짜증이 났다. 외삼촌이랑 국회에 시위 다녀온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어제 엄마의 동선이 이상하다고 느꼈던 이유가 밝혀졌다. 외할아버지 때문에 국회에 시위를 다녀온 건데 왜 아빠한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빠가 외삼촌을 싫어해서라고 한다. 내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봤는데 내 남편이 내 동생을 싫어한다고 하면 나는 더 대놓고 챙기고 일정을 이야기하겠다.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함께 시위를 참가한 분은 누나가 있어도 그렇게 살갑지 않다고 했다면서 “어떻게 그런 와중에 사이가 안 좋을 수가 있냐?” 했다. 나는 엄마한테 그 말을 해버렸다.


 “엄마 내가 왜 엄마랑 같이 있는 게 힘든 줄 알았어. 내 눈에 엄마는 언제나 울거나 우울하거나로 비쳐. 그래서 힘이 들어.”


  엄마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없다.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그 누구도 나를 어쩔 수는 없다. 나는 나만 어쩔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 벗어나고 싶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갑갑하고 짜증이 치밀어서 바로 책방에 올 수가 없었다. 나는 ‘서울식물원’에 주차를 하고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봄 빛, 연두가 곳곳에 파릇파릇하다. 튤립은 떡잎을 내밀었다. 열심히 걷다 보니 나무가 저마다 조금씩 연둣빛이다.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데 호수 건너편에 있는 나무는 모두 연둣빛 아우라를 걸치고 있다. 골똘히 생각하며 잰걸음으로 걸었더니 감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머리가 뻗쳤다.


  나는 서서히 엄마를 생각하는 일에 지쳐가고 있다. 엄마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무게보다 무겁다. 내 가슴을 심하게 짓누르고 있다. 벗어나려고 애쓰고 또 애쓰지만 평생 나에게 각인된 것이 아닐까. 엄마가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병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상담을 받았으면 좋겠다. 너무너무 혼자 살고 싶다. 엄마와 잘 지내는 딸들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는 그 기술을 점점 익혀갈 수 있을까?


  감정디자인을 하면서 정말 ‘객관적으로 보기’, ‘거리두기’가 잘 된다. 그런데 엄마라는 산 앞에 서면 턱 막힌다. 숨이 막혀온다. 이 문제를 정말 간절하게 풀고 싶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있지만 동시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도 같다. 내가 엄마한테 원하는 것은 빨래, 밥, 청소가 아니다. 그냥 자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모가 되고 아기를 낳는 일은 정말 너무 큰 일 같다. 우주를 머리에 지고 있는 일. 이런 정도의 무게.


  비혼 주의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 내 아이가 있는 상상을 이따금씩은 해 봤다. 아이가 있으면 뭘 하라 마라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나는 관계는 가벼운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혈연관계는 날 때부터 서로에게 많은 짐을 지우기 마련이다. 그래도 최대한 가볍고 웃고 즐거운 것이 좋다. 가끔 힘들 때는 서로 기대고 격려하면 된다. 그래서 호적으로 묶인 관계에 회의적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 생각에 변함이 없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죽기 전까지 결혼을 안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내 기존의 생각을 손바닥 뒤집을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깊은 관계가 되는 것이 불편하다. 적당한 것이 좋다.


   오늘 본 그 버드나무의 싹이 형광 연둣빛으로 올라온 것처럼 풋풋하고 싶다. 내 삶이 풋풋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울리거나 힘들게 하거나 (아마도 벌써 많이 그랬겠고 현재도 알게 모르게 그러고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나 혼자 이 지구를 잘 여행하다가 어느 날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리라’ 하고 싶다.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잘 넘어가리라 믿어주고 있다. 이 시간을 돌아보면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이 오겠지. 그러면 그때는 또 다른 생각을 머리에 이고, 지고 있겠지. 그래도 나는 믿고 있다. 고선영은 그 생을 잘 살았노라.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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