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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쓴이 May 08. 2023

마음은 그런 데 있는 게 아닐까.

‘허’를 찔리다의 ‘허’ 같은 곳.

안녕하세요. P입니다.


최근에 저는 제주 여행을 다녀왔어요. 4박 5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저는 모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바라보고, 드넓게 펼쳐진 하늘도 바라보고, 바람도 마음껏 느끼고 왔습니다. 덕분에 찌글찌글했던 마음이 다림질한 것처럼 곱게 펴지고, 평수도 한 두 평 넓어진 것 같았어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아, 시원하다~했고, 요리를 망쳐도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했고요. 그리고 오늘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날! 사람이 빡빡한 9호선을 타고 출근했습니다. 지하철 통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섰어요. 백팩을 멘 사람이 무자비하게 제 옷을 휘갈기고, 옆 사람과 볼 키스가 가능한 수준으로 밀도 높은 출근길을 지나,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사람들도 만나고 여행 잘 다녀왔냐는 안부 인사도 나누고. 기분도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문제는 퇴근길. 아침처럼 지하철 통로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OST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 오른쪽 날개뼈 부근, 살짝 바깥쪽. 손이 닿으려면 억지로 짚어야 하는 그곳을 누가 퍽 하고 찌르는 것 아니겠어요? 예민하고 생경한 부분을 누군가 팔꿈치로 찌른 거예요. 저와 등을 지고 서 있던 사람이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뒤에 있던 저를 쿡. 아니 팍 하고 찌른 것 같았어요. 순간 날카롭게 뒤를  돌아봤지만, 뻔뻔한 뒤통수만 보이더라고요. 가볍게 눈짓이라 했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상하진 않았을 텐데요. 넓고 반듯하던 제 마음이 쪼그라든 채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예능을 보고, 샤워한 뒤에 요플레를 먹으니 불쾌한 기분은 금세 사라지고 마음도 넉넉해졌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나. 어떻게 생긴 놈일까. 분명한 건 제 마음이 신체 어떤 부위에 붙어있다면 그건 심장 부근이 아닐 것이다. 손이 잘 닿지 않는, 그래서 외부 자극… 이를테면 공격이나 다정함이 와서 부딪혀도 전혀 대비할 수 없는 곳에 마음이 붙어 있을 것이다. 하고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쪼그라들었다가 별거 아닌 일로 다시 팽팽하게 넓어지는 마음. 신경을 쓰던, 쓰지 않던, 마음은 언제나 거기 붙어있어서 이따금 누가 손으로 토닥토닥 두들겨 줄 때나, 따뜻한 물로 노곤하게 샤워할 때, 타인이 무심하게 쿡 찌를 때, 그제야 “아차! 마음이 여기 있었지.” 싶은 거죠.


오늘 저녁엔 잠에 들기 전에 마음이 붙어있는 곳을 두어 번 쓰다듬고 자야겠습니다. 자주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고, 오늘도 잘 살았으니, 내일도 넉넉하게 잘살아 보자. 그리고 당분간은 휴가가 없으니 좀 봐달라고요.


마음이 한평 넓어지고
두평 넓어지고
세평쯤은 거뜬히 넓어졌던 제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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