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어울리게… 해주세요. (무책임)
안녕하세요. P입니다.
여러분은 ‘고수’하고 있는 나만의 헤어스타일이 있나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짧은 머리, 숏컷을 고수 중이에요. 돌이켜보면 머리가 길었던 시절은 학창 시절뿐이었어요. 엄마는 제 머리로 이것저것 해보시길 좋아하셨고, 저는 미용실에 가는 대신 맛있는 것 또는 갖고 싶은 장난감을 대가로 받았습니다. 당시에 엄마는 제가 학교에 가기 전에 맞으면 무시무시하게 아픈 방울 머리끈으로 제 머리를 요리조리 꾸며주는 걸 참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눈이 위로 치켜 올라가도록 머리를 높게 묶기도 하고, 빨간 머리도 했었는데요 - 어린 마음에 머리를 감으면 빨간 물이 나오는 게 피 같아서 너무 싫어했던 기억이 있네요.
중학생 때는 학교 동아리인 밴드부에 들었는데요. 선배들은 모두 숏컷의 짧은 머리였고 그래서 저도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왠지 이상한 연결이긴 하지만, 그때는 왜. 내가 속한 무리 속 사람들과 비슷한 행색으로 다니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잖아요. (저는 그게 조금 심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는데요. 학교 후배들은 저에게 편지를 쓰며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밴드부에 숏컷머리인 선배(…) 였던 탓인지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어요. 그리고 그 맘 때쯤 학교 안에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나서 갑자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어요. 나중에 이유를 듣고는 얼마나 울었던지요. 머리하나 짧게 잘랐다고 레즈비언으로 소문이 나고, 왕따를 당하는 시절을 보냈네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레즈비언으로 소문난 게 억울해서 머리를 기르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길진 않고 한 … 쇄골쯤 오는 길이였어요. 반곱슬인 탓에 매직을 해도 금방 구불거려서 아침마다 고데기로 펴고 다니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대학교 시절엔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다녔고요. 그 상태로 이십 대 중반까지 단발머리를 고수하다가 어느 날, 어느새 머리를 다시 숏컷으로 잘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를 자르기까지 제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몰라요. 잘 어울릴까? 이상하진 않을까? 미용사가 너무 짧게 잘라버리면 어쩌지? 사람들이 날 오해하면 어쩌지? 수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잘랐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적당히 짧은 숏컷을 유지 중이에요.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죠. 과거의 경험이 성인이 된 지 훌쩍 지난 후의 저를 옭아맨 게요. 그깟 머리카락이 뭐라고요. 머리카락은 그냥… 단백질로 이루어진 ‘털’ 일뿐인데 말이죠. 남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머리를 홀랑 자르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일단 한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는 일은 꽤나 귀찮긴 하지만 좋은 점이 훨씬 많더라고요.
가장 좋은 건 제 생활양식과 가장 잘 맞는 머리를 찾았다는 점이에요.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을 때 고개를 푹 숙여 감지 않아도 되고요. (머리를 과하게 숙여 감으면 허리가 아작 납니다.) 머리가 빠르게 말라요. 그리고 목 뒤로 길게 내려오는 머리가 없어 가볍고 시원합니다. 거추장스럽지 않아요. 밥을 먹거나 양치를 할 때 내려오는 옆머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앞머리는 반으로 갈라 손으로 쉭쉭, 뒤로 넘길 수 있어 편합니다. 긴 머리일 때 매일 아침 고데기를 하고 다녔는데요. 그런 쓸데없는 부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특히 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그 긴 머리를 말리고 고데기를 하느라 진을 쏙 뺏던 기억이 있거든요. 게다가 저는 숱이 매우 많아요. 여러 부분에서 숏컷을 하고 난 뒤 해방감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제 머리가 너무 좋아요.
가족이나 애인, 사랑하는 친구들은 제 헤어스타일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는 머리가 짧은 P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가끔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특히 이런 류의 얘기가 듣기가 싫은데요.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형제인 줄 알았어” 또는 머리를 짧게 자른 저를 보고 “남자인 줄 알았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좀 구닥다리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자는 핑크&남자는 블루 같은, 뭐랄까 화장실 표지판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내게 잘 맞는 스타일이 아니라 화장실 표지판 같이 누가 정한 지도 모르는 관념 속에 살아가는 구닥다리 훈장님 같단… 생각을요. 그래서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단 뜻이니까요. 우리는 원래 대머리로 태어납니다. 머리카락은 안경이나 자주 입는 옷처럼 자기 취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맨 몸에 취향에 맞는 옷을 걸쳐 입는 것처럼 머리도 마찬가지고요. 여자라고 해서 꼭 긴 머리 일 필요는, 남자라고 해서 꼭 짧은 머리일 필욘 없단 거죠. 저도 수년 뒤에 취향이 바뀌어 머리를 기를 수도 있는 거고요.
글이 잠시 다른 곳으로 샜네요. 어쨌든 여러분, 나에게 잘 어울리는 머리는 뭘까? 고민하지 마세요. 나에게 잘 어울리는 머리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머리. 내가 하면 편한 머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분들, 짧은 머리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특히 긴 머리로만 살아오셨다면 머리를 짧게 자른 후 전에 없던 편리함과 해방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숏컷 절찬 홍보로 글을 마칩니다. 좋은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