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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Aug 14. 2023

[헤어스타일] 결혼식 때 제일 고민했던 것

결혼식 전 날 앞머리를 다듬은, 그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다.

아는 동료가 친구 결혼식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친구는 신부였는데 개인 사정으로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됐다나. 그래서 앞머리가 있는 채 드레스를 입었고, 동료는 그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뭐가 안타까운 건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동료의 설명에 따르면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이고, 신부라면 자고로 여신 머리를 해야 하는데(?) 앞머리가 있어서(??)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당사자인 신부가 스스로 안타까워했는지 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주변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안타까워 한다는 게 희한했고, 신부라면 자고로 여신 머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웃겼다.


희한하고 웃긴 이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내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고민할 때였으리라. 거의 나는 삼십 년째 앞머리가 있는 채로 살고 있었는데, 앞머리가 있어서 여신 머리를 못한 신부가 안타까웠다는 말이 자꾸만 거슬렸다.


참고로 나는 내 앞머리를 좋아했다. 앞머리는.. 내가 어린이 시절일 때, 그러니까 내 머리 스타일에 대한 주도권이 내가 아닌 엄마에게 있을 때 그 주도권을 찾은 계기이기도 했다. 뭔가 거창해 보이는데 실상은 이렇다. 언젠가의 여름방학에 <요술공주 샐리>라는 만화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내 눈에 등장인물들이 너무 예뻐 보이더라고. 왜 이렇게 예쁜 거지, 어린 나이에 열심히 관찰하고 골똘히 생각한 결과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더랬지. 그것은 바로 앞머리. 그들에게는 모두 앞머리가 있었던 것이다. 유레카! 당장 나는 실행에 옮겼다. 주방 가위를 가져와 거울도 보지 않고, 머리를 한 움큼 잡아 댕강, 그렇게 앞머리를 만들었다. 엄마한테 엄청 혼났던 것 같은데 그 뒤로 계속 나는 앞머리가 있는 스타일을 고수해왔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동료의 말이 자주 떠올랐고 내 앞머리가 거슬렸다. 실제로 머리를 기르고 있었고, 자라난 앞머리는 거지존에 입성해 어정쩡했다. 앞머리가 마치 나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이. 좀 우습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은 비교적 쉽게 해놓고선 앞머리에 이토록 오래 고민하는 게. 몇 년 전 동료가 흘린 이야기에, 심지어 지금은 연락처도 없는 사람의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결국 결혼식 전 날 앞머리를 다듬었다. 여신 머리고 나발이고 남이 안타까워 하건 말건 뭐가 중요한가, 아무래도 나는 앞머리가 있는 게 좋은 걸. 여신 머리가 정석이고 그게 더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으나 내 결혼식이니까 내 맘대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글을 쓰며 결혼식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아무래도 여신 머리를 하는 게 좋았을까, 이런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앞머리는 신경 쓰이지도 않고 내 표정에만 눈길이 간다. 뭐가 그리 신나서 저리 웃고 있나 싶어서.


요즘 앞 날에 고민이 많다. 회사 생활과 커리어, 내년의 이사와 가족 계획까지. 하나같이 무거운 고민이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진다. 정답이 하나인 양 조언을 들으면 혼란스럽다. 다 그렇게 산다는 말에 염증이 난다. 문득 결혼식 전 날 앞머리를 다듬은, 그 마음으로 살아야지 싶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려 보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방치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그러다 나다운 것이 뭔지 깨닫고, 내게 어울리는 것을 택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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