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내가 통과한 시간들의 결과일 테다. 그것은 경험일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겠다. 내가 지나치지 못하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가장 취약해지는 시즌은 연말이다. 그건 작은 볼 안에서 눈이 흩날리는 스노볼, 뾰족하고 반짝이는 트리이다. 빛 아래 걸어 두거나 전시장 위에 올려두는 작은 오브제, 보송보송한 양말, 스웨터…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두거나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동거인이 생기고, 나의 집이 생기고 난 뒤 내가 가장 고대한 것은 집 안에 내 키만 한 트리를 두는 것이었다. 그 트리에 멋지고 반짝이는, 내가 좋아하는 오너먼트를 실컷 걸며 동거인과 이게 예쁘니, 저게 더 예쁘니 대화 나누는 그림을 얼핏, 어릴 적부터 그렸던 것 같다. 시간이 한참 지나 1월이 되면 저 무시무시한 걸 언제 또 치우냐며 투덜대다가도 합심해서 치우고 내년 겨울을 또 기약하는 그런 그림 말이다.
어릴 적 생각을 해보자. 엄마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내 머리통만 한 트리를 테레비 옆에 꺼내두고는 했다. 비좁은 집, 누런 벽지와 그 트리 사이에는 온도차, 그러니까 배경과 트리는 안 어울려도 한참을 안 어울렸지만 어린 나는 즐거웠다. 아마 성인이 된 후에도 즐거웠던 것 같다. 당시에도 그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크리스마스 이벤트라는 걸 알았다. 트리에 전구를 휘휘 두르고는 집 안의 모든 불을 끈다. 엄마가 알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탁! 하고 키면, 엄마와 나의 함성이 터졌다. 반짝반짝 알전구 빛이 빛나면 엄마 얼굴이 보였다. 크리스마스 하면 별다른 기억은 없지만 그 기억은 또렷이 떠오른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게 된 것들은 나의 결핍일까, 경험일까.
더 멋진, 더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싶다는 건 결핍임이 분명한데 -
그 시절과 반짝이는 엄마의 웃는 얼굴이 그리운 걸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된 것들은 엄마가 내게 준 경험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