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지 2주가 지났다. 나는 멍하게 있다가 노래를 들으면 울었고, 씻다가 울었다. 밥을 먹다가, 설거지를 하다가도 울었다. 타인의 얼굴 앞에선 한 방울도 나지 않던 울음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기계가 잠금을 해제하듯 쏟아졌다. 아니 터졌다는 표현이 맞다.
금방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다. 슬퍼할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았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나보다 상실감과 무력감이 더 클 이들에게 안부를 전해야 했다. 매일같이.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더 견디지 못할 것 같아,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였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 곁에 있으면 속절없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슬픔은 한낮에 휘발되는 것 같다가도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어김없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도 노래는 듣지 않는다. 작은 멜로디에도, 흘러가는 가사에도 마음이 운다. 회사에서는 핸드폰에 진동만 와도 긴장되었다. 또 어떤 일이 있으려고 내 핸드폰이 울리나, 뒤통수가 얼큰해지는 일이 반복된다. 긴장감에 목 뒤가 빳빳하고 딱딱했다. 명치는 손으로 쓸기만해도 아팠다. 멍이 든 것처럼 뭉근한 아픔이 꽂혔다. 꼬박 일주일을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남겨진 사람에게 슬플 틈을 안주나, 참 못됐다. 나쁘다. 생각하다가 금세 마음이 닳았다.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슬픔은 가장 뒤에 온다. 먼저는 원망이 오고 - 그다음은 미안한 마음. 그다음은 슬픔이다.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원망, 살아있을 때 좀 더 따뜻하지 못했던 나의 죄책감과 미안함 그다음에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상실감과 슬픔이 켜켜이 쌓인다. 둑에 쌓인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할 때, 노래를 들을 때, 밥을 먹을 때 어김없이 둑이 무너졌다. 둑은 매일매일 착실하게 쌓였다. 쌓이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며 나를 단련시키는 건가, 이게 뭔가. 신이 있다면 이렇게 나쁠 수 있나. 너무 못돼서 신이 없는 거 같다가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그래야 내 말 전해서 들려주지.
잘 지내고 있어? 아프지 말자. 보고 싶다. 사랑해.
메시지 보내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슬프고 아프다. 신이 전해주기를.
아픔은 옅어지겠지, 하고 시간에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