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게 하는 것들

by 읽쓴이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든 때가 또 있을까? 싶은 최근의 일들. 얼마 전엔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정말 누가 하늘에서 비를 <내가 있는 곳에만> 일부러 쏟는 듯했다. 자의식과잉이라 해도 할 말 없지만 그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운전하는 친구에게 농담 삼아 말했다.


“야 요즘 이게 내 삶이야”


친구는 헛소리 말라고 했나,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나. 어쨌든 그러다가 비를 붓는 하늘에 대고 소리 질렀다. 다 ㅇㅇㅇ한테서 꺼져!!! 우리는 차 안에서 우하하 웃었다.


우스갯소리지만 나에겐 요즘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싶은 일들이 많이 생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냈을 때는 남편을 잡고 엉엉 울었다. 나는 평생 길거리에 쓰레기도 마음대로 안 버리고, 무단횡단도 안 하고, 핸드폰 요금도 한번 밀린 적 없고, 누구를 괴롭힌 적도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도대체 내가 뭘 크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러느냐고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 콧물, 땀이 범벅이 되도록 한참을 울었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적응하기도 전에 메인 프로젝트를 맡았다. 부담감이 상당했고 하기 싫어 회피하고 싶었지만, 가족 상을 당한 뒤에는 차라리 이런 일이 내게 주어진 고심거리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내가 짊어지고 싶지 않은 삶의 부피가 커져가니 상대적으로 회사의 일은 작게 느껴졌다. 힘든 일을 겪은 후에도 출근해야 하는 현실이 고단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큰 프로젝트를 맡아 정신없이 일을 해낸 것으로 일종의 도피를 한 듯하다.


얼마간은 일기도 쓰지 않았다. 일기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가도, 과거의 일기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면 또 울고 - 그 울음이 멈추지 않아 잠들기 전까지 울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이제는 일기 쓰기를 잠정 그만두었다.


어쨌든 그렇게 큰일들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나니 이제는 내 건강이 문제였다. 줄곧 무기력하고 우울감에 빠져있었다. 마음이 힘드니 몸의 면역도 떨어진 걸까? 갑자기 하루아침에 목이 붓고 아프더니 열이 38도까지 올랐다. 병원에 가니까 코로나 증상이랑 비슷하다고 해서, 우선은 약을 처방받아왔다. 주사도 맞고 수액도 맞았다. 그렇게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월요일까지 꼬박 3일을 땀에 절은 채로 지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마음이 껴안기는 순간들이 있었다. 속수무책으로 껴안겼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왔는데 문 앞에 종이가방이 놓여있는 거다. 열어보니까 친구가 복숭아를 문 앞에 두고 갔다. <복숭아를 보면 네가 생각나>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이걸 사서 여기까지 왔을까. 그만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게 또 나를. 내 온몸을 덮을 만큼 너무 큰 위안이 되어서 종이 가방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울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고마움을 표하다가 울었다. 울보가 다 되었다. 복숭아는 아끼고 아끼다가 겨우 먹었다.


어떤 날은 시누이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일까 싶어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괜찮냐는 물음과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실하고 튼튼한 무화과를 보냈으니 먹어보라고, 이런 때일수록 기운을 더 내야 한다고 위로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떨리는 목소리와 빨개지는 코를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미어지는 마음을 괜찮다고 쓸어주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한참을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엄마가 좀처럼 보내지 않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한발 더 앞서서 나를 마중 나와 기다려준다. 메시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문전박대하고 반기지 않더라도, 돌아갈 엄마 품이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데워졌다.


남편에게 가장 고맙다. 남편은 스킨케어 하다가 우는 나를, 밥 먹다가 울고, 자려고 눕다가 우는 나를, 파를 다듬다가 우는 나를, 언제나 안아주었다. 그냥 든든한 나무처럼 그랬다. 위로의 말은 건네지 않았다. 그저 내 등을 쓸어주고, 휴지를 가져다 눈물을 닦아주고, 기분이 나아질 수 있도록 바깥바람을 쐬게 해 주었다. 달달한 간식을 손에 쥐어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간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시간에 기대는 줄 알았는데, 나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기대고 있었고, 그들이 나를 살게 했다.


8월 한 달은 꼬박, 내게 그런 달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힘든 순간이 또 올까?

언젠가는 또 오겠지. 그러나 나는 안다. 나를 살게 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을.

그래서 반드시 견뎌내고, 다시 살아낼 것이다.


9월은 평안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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