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가을
지난여름, 8월이 내게 너무 지난하고 힘들었다. 가족을 잃고 마음이 미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걱정과 시름이 두 어깨를 짓누름을 실감했었다. 슬픔과 아픔에 쾅쾅 엉킨 채로 일상을 살아갔다. 밤이면 베개가 눈물로 얼룩지고, 아침에는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살갗이 아리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개찰구를 나오면서부터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가을이구나. 바람이 마음을 씻겨주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감이 느껴지는 것, 계절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구나.
아프고 잔인한 여름이 가고 드디어 가을. 바람으로 가을이 왔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나는 여전히 8월의 한가운데 있는 줄 알았는데 시간은 이렇게 성실하게 갔다. 나도 9월에 있구나. 더럭 눈물이 났다. 바람이 반갑고 고마웠다. 꽉꽉 들어찼던 내 일상에 바람이 휘 불어와서, 드디어 숨 쉴 수 있는 기분이었다.
하늘에서는, 하늘에 있으니까 이 바람을 먼저 느낄까? 한여름에 와서 한여름에 떠났는데, 이 바람을 함께 느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을이 좀 더 빨리 왔으면 그렇게 허무하게 안 갔을까?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은 메워지지 않는다. 가을이 왔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