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그래서 카메라를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한다. 현재 진행형이다. 무엇이든 오래 곁에 두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붙잡고 애정을 준 것이 카메라였다.
스물넷, 처음 산 카메라는 펜탁스의 K200D라는 모델이었다. 찰칵 소리가 우렁차고 정직하게 울리는 그 카메라를 들고 서울 곳곳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한여름엔 땀을 줄줄 흘리며, 한겨울엔 손끝이 얼어 달달 떨면서도 애지중지 곁에 두었다. 그 카메라로 보면 아스팔트 틈새에 핀 민들레조차 특별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빨래를 정리하던 엄마의 발에 걸려 땅으로 툭 떨어지면서 결국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다음으로 산 카메라가 지금까지도 곁에 있는 후지필름 X70이다. 아마 스물여섯 살쯤, 대리를 달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샀던 것 같다. 내가 살면서 구매한 물건 중 가장 비싼 물건이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늘 그 녀석을 챙겼다.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지 오키나와, 알록달록한 색감이 예뻤던 베트남,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기던 태국,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갔던 스페인까지. 처음엔 애지중지하느라 렌즈 보호용 UV 필름을 끼우고 스트랩까지 달아 늘 목에 걸고 다녔다. 흠집이 날까 봐 전용 가방에 넣고 조심스레 다루던 때를 지나, 지금은 먼지가 살짝 쌓인 채 우리 집 책방에 놓여 있다.
사진을 찍으며 매년 느끼는 좋은 점은 그 시절 내가 무엇을 눈여겨봤고, 무엇을 특별하게 여겼는지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서울에 대한 동경이 컸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늘 서울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종로를 특히 좋아했다. 비 오는 종로, 해가 쨍쨍한 종로, 초가을의 종로, 눈이 펑펑 내리는 종로. 사계절을 놓치지 않으려 자주 찾았다. 오래된 간판, 경복궁, 주황빛 불빛으로 거리를 밝히는 가게들, 이름 모를 무리지은 꽃들까지 모두 내 카메라 속에 담겼다.
그러다 현 남편, 당시 애인이었던 사람이 가까워지자 피사체는 자연스레 그가 되었다. 지금 보면 멋없고 촌스러운 사진들이지만 그때는 닳도록 찍어댔다. 웃는 얼굴, 버스에서 잠든 얼굴, 우스꽝스럽게 표정을 지은 사진들이 SD카드 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다음은 여행 사진으로 가득했다. 거울 앞에 서서 카메라를 든 나, 거리의 이색적인 간판, 푸른 하늘, 고양이와 강아지, 음식들. 여행 중 카메라는 여행을 더 여행답게 만들어줬다. 핸드폰 카메라는 가볍게 눌러도 되지만, 진짜 카메라는 조금 더 고민하게 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까지 피사체를 고르고 신중하게 바라본다.
나의 가장 오래된 카메라. 지금은 작은 나사가 여기저기 빠져 있고, 충전기와 배터리는 단종되어 구할 수도 없다. 두 시간만 켜놔도 방전되는 늙은 물건이 되어버렸다. 이왕이면 나이가 일흔이 되어도 이 카메라가 여전히 켜지면 좋겠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건, 내가 함께한 가장 오래된 물건, 그것은 언제나 카메라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