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이번 주제는 다큐 3일 안동역 약속 콘텐츠를 보고 J가 제안했다. 2015년 8월의 내 모습을 써보기.
흠, 10년 전 8월에 나는 뭘 했을까? 사진첩을 여러 번 들여보다가 거기엔 당시 남자친구, 현 남편의 셀카만 온통 있었다. 얼굴 사진만 있다 보니까 뭘 했는지 추억할 수 없어서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나는 2015년부터 꾸준히 블로그에 개인 일상을 남기고 있다.) 그 블로그에 쓰인 글 기반으로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 글을 써본다.
2015년 8월 29일(토) 당진 여행
서점에서 그믐이라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당진으로 떠나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급작스러운 당진여행. 인천에서 가깝길래 한번 가보자 싶었다.(책 그믐과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 길어야 1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는 정보에, 버스표가 6천 원 밖에 안 한다는 말에, 그리고 뭣보다 당진이라는 곳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 떠나보자 싶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3시쯤 당진터미널에 도착해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김밥 천국에서 참치 김밥과 라면을 먹었다. 김이 펄펄 나는 라면과 분식집 접시 위에 통통하게 누운 참치김밥이 지금 봐도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밥을 먹은 후 어디 가지 싶었다. 생각해 보니 당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는데 무작정 와버린 것이다. (이때 MBTI는 P였던 걸까?) 마구잡이로 검색하다 당진에 아미미술관이리는 곳이 있다고 해서 시내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당진 터미널에서 55번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미술관은 작고 소박하고, 온통 풀에 감싸있어서 비밀의 정원에 온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폐교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었다고… 어쩐지 미술관 근처에 놓인 우체통이며, 조형 작품은 시간의 때가 묻어있었다.
미술관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 날 유난히 해가 뜨거웠는데, 미술관 안에는 푸른색 계열의 작품이 많아, 창을 타고 들어오는 빛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바깥 정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 미술관 곳곳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작품, 하늘에 달린 천 모빌까지 - 아기자기한 장소라 마음에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버스를 기다려 다시 당진 터미널로,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성공적인 혼자여행이었다.
10년 전의 나는 꽤 무모하고 과감하게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었구나. 그것도 급작스럽게라니. 놀라웠다.
당진엔 여러 번 방문했었다. 애인과 아미미술관에 한번 더 다녀오기도 했고, 바다를 보러도 여러 번 갔다. 끝내주는 게장 맛집을 발견해서 그걸 먹으러도 갔었다. 하지만 처음 당진에 간 기록이, 홀로 여행이었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10년 전의 블로그를 탐색하며 나 꽤나 알차게 살았군..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최근에는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날 생각을 잘하지 못한다. 엄두가 안 난달까. 아무래도 계획형 인간이 된 것, 그리고 떠남에 있어 수반되는 여러 가지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집을 비운다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이젠 집이 가장 좋다.
그러나 10년 전, 훌쩍 떠나는 나를 보고 가끔은 그래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계산하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고 싶으면 그냥 해보기. 갑자기 결정하고 예정되지 않은 시간과 경험을 누려보기.
요즘은 너무 예상 가능한 것들만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끔은 과감해져 보자 하고, 10년 전 나를 보며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