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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녀_네 죄를 사하노라.]

내 생애 가장 큰 용서

by 읽쓴이

용서라는 말이 참 무겁게 느껴진다. 뭔가 ‘네 죄를 사하노라.’ 같은 문구가 같이 떠오르는 것만 같은데,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용서를 받은 기억도, 용서했던 기억도 잘 없었다. 엄마나 남편에게도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용서를 받아본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어. 그럴 일이 잘 없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너 뭐 잘못했냐?라는 뉘앙스의 질문을 붙이기도 했다.) ‘용서’라는 것이 하는 주체와 받는 주체의 상하 관계가 느껴지는 단어라 그런 걸까?


이번 글은 ‘용서’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용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가 상처받았던 상황과 용서할 법한 사람을 떠올려봤다.


1. 나의 과거 이야기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그녀, 학창 시절 나를 따돌렸던 ‘S’


중 1 때까지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는데, 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졸렬한 험담과 이간질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내 웃음소리가 너무 커 본인의 ‘쪽’이 팔려서 같이 못 다니겠다고 나를 흉을 봤던 그 아이

내가 소위 말하는 ‘메이커’가 있는 가방을 메지 않고, 신발을 신지 않는 것. 시장에서 가방과 신발을 사 신는 것이 창피하다며 같이 다니기 싫다고 했다.

게다가 내가 짧은 머리에 밴드부라는 걸로 ‘레즈비언’이라고 소문을 내었다. 아니, 레즈비언이면 뭐 좀 어떤데? 그로 인해 나는 짧은 머리를 한동안 하지 못했었다. 급식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 들릴 정도였다. (여중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은 매장이나 다름없었음)


이제 그녀의 죄를 사하려고 한다. 중학생이면 얼마나 어렸나? 그 친구는 내가 진짜로 미웠다기보다는 그저 분위기를 주도하고 싶은데 하나의 사냥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젠 진짜로 20년도 더 지난 일이니 이제 이 일과 그 이름은 떠올리지 않고 묻어두려 한다. 용서한다. S


2. 내가 5천 원 안 훔쳤는데 나를 오해하고 내 손바닥을 때린 엄마


우리 집은 엄한 집이었다. 내가 아마 초등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엄마가 분명히 5천 원을 비디오 데크에 올려놓고 나갔는데 그게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다. 엄마는 곧장 언니와 나를 거실에 앉혔다. 무릎을 꿇고 아니라고 억울함을 표명하고 나의 알리바이를 소상히 얘기했다. 언니는 다행히 용의 선상에서 벗어났지만 나는 아니었다. 내가 초코링을 사 먹은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용돈을 안 줬는데 어디서 나서 사 먹었냐는 것이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크게 혼이 나고 손바닥을 맞았다.


알고 보니 그 돈은 아빠가 슈퍼에 간다고 쓴 돈이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어물쩍 치킨으로 넘어갔다. 물론 맛있게 먹었지만, 아직도 기억할 만큼 내겐 억울한 사건이었다.


이젠 나를 오해했던 엄마를 용서하려고 한다. 엄마도 속으로 많이 머쓱했겠지. ‘엄마, 나 옛날에 이거 서운했어’ 레퍼토리에 빠지지 않는 내용이었는데 이젠 묻어두려 한다. 엄마, 용서할게!


3. 내 MP3 훔쳐 간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녀


고2였던가 고3이었던가. 내 보물 아이리버 MP3를 누군가 훔쳐 갔다. 요즘과 다르게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까지 받아서,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굳이 만들어서 담아 다녔기에 그것은 나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당시 영어를 상급반/중급반으로 나누어 수업했었는데, 수업을 받고 자리로 돌아오니까 내 자리 신발주머니에 있어야 할 MP3가 사라진 거다. 내가 부산을 떠니까 짝꿍이 내게 뭘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반 짝꿍에게 말했다. 그 친구도 함께 부산을 떨다가 결국 MP3 도난 사건이 반 전체에 퍼졌다. 그러다 어? 나도 전자사전 없어졌어! 하는 친구도 있었고, 틴트가 없어졌다나 그런 친구도 있었다.


범인은 끝내 밝히지 못했지만, 난 사실 범인이 누군 줄 알고 있었다. 엄청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아이였는데, 나는 내가 혹여나 오해하는 거면 어쩌지 싶어서 그냥 잃어버린 채로 지냈다. 엄마에겐 뒤지게 혼이 났다.


이젠 내 MP3, 아니 당시 내 정체성이었던 플레이리스트를 훔쳐간 그녀를 용서하려 한다. 네 죄를 사하노라. 그 뒤로 다시 누군가의 물건에 손을 대며 살지 않았길…


그리고 이젠 내가 용서받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너무 많다. 나의 민낯이 창피하고, 동시에 미안함에 눈시울이 붉어져 차마 글로 적지 못하겠다.


원래 인간은 용서할 사건보다 용서받고 싶은 사건이 더 많이 떠오르는 법일까?

아니면 내가 용서받고 싶은 일과 사람이 많은 것일까 -


괜찮아, 이젠 괜찮아. 네 죄를 사하노라 -

상대에게 용서를 받고 싶은데, 이젠 그렇게 말해줄 상대가 없을 때 마음이 크게 괴롭다.


용서를 하든, 받든 하루라도 빨리 하자. 용서를 빌 상대가 있을 때, 용서해 줄 상대가 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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