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푸드가 있는가? 나는 먹보라 할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소울푸드에 대한 기준은 확고하다. 단순히 많이 먹는다고 해서,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소울푸드가 될 수 없다.
내게 소울푸드란, 마음이 허기질 때 먹는 음식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엔 순댓국이었던 것 같다. 아참, 소주도 같이. 한 7년간 인천<->서울로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했었는데 - 그때 광역버스의 줄이 너무 길어 기다릴 엄두가 안 나거나, 너무 추워서 몸을 덥히고 싶을 때, 하루가 고단해 뭐라도 채워야겠을 때 항상 순대국밥에 소주를 곁들였다.
압구정 쪽에 있던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3호선을 타고 교대에서 내린다. 교대역 3번인가, 4번 출구 앞에는 작은 순대국밥집이 있었다. 나는 약속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순대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아저씨들이 득실득실한 곳에서 헤드셋을 끼고, 처음처럼과 순댓국을 하나씩 시키고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식사했다. 아주 천천히 먹었던 것 같다. 정확히 뭐가 힘들고 고단한지 딱 하나를 짚을 순 없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늘 허기가 졌던 것 같다. 적은 월급과 고단한 일, 낯선 사람에 껴드는 일이 참 쉽지 않았다. 순댓국을 먹고 적당히 데워진 몸과 알딸딸한 정신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한숨 자고 나면 내릴 때가 되어 몽롱한 정신으로 집까지 걸어가, 샤워하고 잠을 청했다.
30대가 되어서는 김치볶음밥이다. 난 원래 김치볶음밥을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지만, 남편이 너무 좋아하다 보니 나도 함께 빠졌다. 김치볶음밥이 소울푸드인 이유는 만들기 쉽다는 데 있다. 김치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참치 기름으로 볶는다. 김치볶음밥이 어느 정도 익고 나면 찬밥 2 공기를 잘 부숴가며 볶아준다. 감칠맛을 위한 참치액 한 숟갈도 잊으면 안 된다. 마지막엔 기름을 뺀 참치와 참기를 한 스푼을 넣고 휘휘 저어주면 10분 만에.. 띨롱 하고 완성이 된다. 퇴근 후에 집에 왔을 때 아무것도 하기 귀찮고 게다가 나가서 사 먹는 것마저 사치일 때. 시켜서 먹는 건 더더욱이 싫을 때 - 주로 김치볶음밥을 해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밥을 해 먹고 나면, 역시 나가지 않길 잘했어. 시켜 먹지 않길 잘했어. 한다. 김치볶음밥은 들어가는 수고스러움에 비해 너무 고가치의 만족스러움을 준다.
살다가 넘어졌을 때, 나를 위로할 음식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귀한 일이다. 속을 데우고 배를 불리는 음식 하나로 다시 열심히 살아볼, 또 견뎌볼 힘이 생기는 것이니 -
그런 의미에서 아직 소울푸드가 없는 분이라면, 꼭 만드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