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며 내 이야길, 나의 삶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이번 글의 주제는 터닝포인트.
터닝포인트라…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 인생을 바꿀만한 전환점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내 인생은 물 흐르듯 했다. 흐르던 물이 잠시 잠깐 역류한 적이 종종 있긴 했어도, 어찌 되었건 시간이 앞으로 흐르듯 내 인생도 자연스레 앞으로 흘러갔다. 무언가를 딱히 준비하지 않아도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었다. 순리처럼. 불행인지 다행인지 무언가가 “엄청나게”하고 싶어서 마음이 안달 난 적이 없다.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 뭔가가 너무 싫어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없다. 항상 중간을 지켜가며 모범생처럼 살았다.
그래서인지 인생을 완전히 변화될만한 크나큰 일들은 없었지만, 자잘한 포인트들은 있었던 것 같다.
우선 나는, 소심하고 조용한 편이었는데 성인이 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알아가면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처럼 스몰톡이 어려워 전전긍긍하거나, 발표를 할 때 벌벌 떨지는 않는다. 광고 대행사에 다니며 종종 남 앞에서 이야길 하게 되는 순간이라던가(대단하진 않아도) 혹은 나이가 들어 생각이 유연해지며 변한 것도 같다.
두 번째는 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원래는 술을 입에 잘 대지 않는 편이었는데 20대 후반에 직장 동료, 현재는 친구가 된 이들을 만나며 술을 배웠다. 그러면서 삶에 또 다른 세계를 열었다! 고 할 수 있다.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제철 음식과 함께하는 술, 코끝이 쌀쌀하고 비가 오는 날 분위기에 따라 술을 선택해 마시며 옆구리 살과 턱살이 붙어갔다. 여전히 적당한 음주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세계는 재미있다.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세 번째는 홀로서기. 혼자 살게 되며 본가의 오래된 집에 가려져있던 나의 취향카드를 하나씩 열어볼 수 있었다. 본가에 지낼 땐 항상 바닥에서 잤다. 집이 좁고 오래되어 짐이 많았기 때문에 침대를 놓을 수 없어서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토퍼와 이불을 대충 개고 옷을 그 위로 휙휙 던져가며 갈아입었다. 책상은 대부분 어지러웠고, 옷장도 엉망이었다. 혼자 밖에 나와 살아보니 나는 정리정돈과 청소를 미치게 좋아하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계절마다 방 구조를 바꾸며 푸닥거리를 해야 할 정도로 머무는 공간에 애정을 쏟는 인간임을 깨달았다. 부모님과 계속 함께 살았다면 나의 이런 삶의 태도랄지, 성향에 대해 알 수 없었을 거다. 인테리어 취향은 원목, 베이지톤 베이스에 쨍한 원색을 포인트로 얹는 것이다. 계절마다 집 구조를 바꿔가며, 또 당근마켓을 들락거리며 내 취향을 찾아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이불을 각 잡아 정리하고, 베개를 착착 세워놓고 옷은 반드시 행거에 걸어둔다. 소파나 침대에 아무렇게나? 지금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네 번째는 피부이다. 원래는 피부가 너~무 건강해서 바디로션 따위는 바르지 않은 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사는 집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 소양증이 굉장히 심하게 찾아왔다. 병원도 여러 곳을 다녔다. 어디서는 알레르기, 어디서는 진드기, 어디서는 스트레스, 어디서는 혈액순환, 어디서는… 이유 불명이었다. 그렇게 원인을 헤매며 온 팔과 다리를 긁어댄 상처가 수두룩 하다. 자는 내내 팔다리를 긁어 이불에 핏자국도 더러 있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하도 발라 이제 조금만 긁어도 금방 생채기가 나고, 흉이 잘 낫지 않는다. 상처가 보통 한 달은 간다. 볼 때마다 스트레스다. 어쨌든 이 영향으로 바디로션과 오일을 꼼꼼하게 챙겨 바르게 되었다. 흉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인내심이 늘어갔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인생에 작은 전환점들이 있었다. 마주한 작은 문을 열었을 때 달콤한 젤리가 있던 때도, 보기만 해도 무서운 독버섯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 선택들을 기반으로 또 다른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며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 인생엔 터닝 포인트는 없다. 그저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