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펴주는 사람
이번 글의 주제는 설렘, 요즘 나를 설레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 골몰했다. 음, 아무래도 없었다. 요즘은 좀처럼 설레는 일이 없다.
연말이면 들려오는 캐럴과 반짝반짝 알전구, 흩날리는 눈발에도 대책 없이 설레는 사람이었는데… 회사는 만족스럽지 않고, 일상은 불안정하다. 마음을 돌아볼 여유도, 기력도 없어 일기를 쓰지 않은지도 오래다. 물건을 사는 데에도 감정이 없고, 옷을 입는 재미도 잃어버렸다.
그러다가 얼마 전, 책장에 꽂혀있는 2026년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24년도부터 함께 다이어를 샀던 동료, C와 공동구매한 다이어리다. *현재는 모두 퇴사해 각자 다른 곳에 있지만 이번에도 다이어리를 공동구매했다.* 그래! 이게 있었네. 26년 다이어리를 열어보았다. 빳빳한 종이 감촉이 오랜만이었고, 반가웠다. 그런 김에 24년도와 25년도 다이어리를 열어보았다. 올해는 8월 이후에 거의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앞쪽은 빽빽했다. 매일 감사했던 일을 쓰기도 하고, 활용하기 좋은 영문장을 쓰기도 했다. 그날그날 먹은 것과 운동에 대해서도 꽤 상세히 적어두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의 일기, 여기저기서 사모으던 귀여운 스티커들이 눈에 들어왔다. 24년도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조금 소원한 날도 있기야 했지만 매일 나를 써 내려갔다.
이상하게도 과거 일기를 읽다 보니 갑자기 일기를 쓰고 싶어 졌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이상하다.
그래, 저 때 저것 때문에 고단했었지. 그래도 곧잘 즐거운 일들로 일상을 채워나갔구나. 올 초에도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었네. 연말에도 전시나 공연을 보러 좀 가야겠다. 남편과 이렇게 저렇게 다투다가도, 귀엽게 잘 사과하고 받아주었네. 그래 이 영화 진짜 재미있게 봤지, 친구들과 이런 일들로 세상 까르르 웃었었네…그런 소박한 일기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기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날부터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즉석 사진기를 중고로 구매해, 매일 하루 한컷을 찍고 다이어리에 붙여가며 일기를 쓴다. 또 새로운 방식으로 쓰는 일기라 그런지 재미있다. 설레는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요즘엔 그 사진 일기에 어떤 순간을 포착해서 담을지 거리 곳곳을 유심하게 살펴보게 된다. 이게 좀 재미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설레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설레는 일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생기길 바라지 말고, 능동적으로 그런 마음을 자꾸 만들어야 설렘이 녹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할렐루야!
설렘은 2026년 라임색 다이어리에서 시작되었다. 또 금방 풀이 죽어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투덜대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또 과거의 일기를 열어봐야겠다. 거기에 분명히 나를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을 테니!
P.S 매년 다이어리를 사자고 꼬셔(?) 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동료, C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