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마지막 일기, 유언장.
이건 내 마지막 일기, 유언장.
딱히 잘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떠나는 것이 허무할 줄이야 미처 몰랐어요.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서 남편과 가족들, 가까운 친구들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알거든요. 갑작스러운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에겐 얼마나 허망하고, 또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지요. 얼마나 큰 죄책감을 안겨주는지요. 하지만 죄책감은 가지지 마세요. 운명이 그러했던 거겠지요. 죽어보니 알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뿐인 내 남편에게 인사를 남깁니다. 텔레파시 기법으로 안녕을 전할 테니 잘 전해지면 좋겠어요. DH야, 괜찮니? 우리 둘이 항상 말했던 게 - 서로 “내가 먼저 죽을래” 였잖아. 나는 네가 없이는 못 살고, 너는 내가 없이 못 사니까 그냥 한날한시에 같이 가자.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종종 했는데 말이야. 너무 빨리 하늘로 와버려서 미안해. 그리고 내가 없어도 너는 남은 삶을 기꺼이, 또 충분히 잘 살고 와야 해. 네가 아주아주 먼 훗날에 이곳에 오면 긴 여행길에 지친 네가 쉴 수 있게 안락한 집을 꾸려둘게. 평생 원했던 바닷가 앞에 집을 지어두고, 해먹도 걸어두고, 네가 좋아하는 레몬 맥주도 잔뜩 쟁여둘게. 그리고 알록달록 귀여운 튜브도 잔뜩 모아둘게. 좋아하는 딸기랑 파인애플도 산처럼 쌓아놓고 - 매일매일 김치볶음밥도 해줄게. 여기 저승에서 하는 록페스티벌 있으면 내가 비싸더라도 반드시 티켓팅해둘게.
DH야, 가족들 멀리하지 말고 가까이 보듬으며 지내, 너는 너무 외로운 사람이잖니. 사람을 너무 밀어내거나 의심하지 말고, 또 그렇다고 너무 쉽게 믿어버리지도 말고 지내야 해. 너는 나밖에 없는 사람이라, 내가 없으면 네가 너무 외롭게 지낼까 봐 그게 걱정스러워.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90살 넘어서 와. 사랑해.
그리고 엄마 아빠,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집니다. 불효 중에 최고는 부모 두고 먼저 떠나는 거랬는데, 두 분만 남겨놓고 와버렸네. 남은 생은 딸내미 소원이니 사이좋게 지내시면 좋겠어요.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삶이 엄마 아버지에게 너무 가혹했지, 그래도 나는 두 분 딸로 태어나 감사한 날들 많았어요. 진심입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인생 가장 크고 튼튼한 뒷배, J와 S야. 벌써 너희들이 보고 싶다. 20대 후반에 만났지만 내 인생을 가득가득 즐거움으로 채워준 이들이 바로 너희들이야. 마음이 울고 있을 때 누구보다 따뜻하게 안아준 이들이 너희야. 나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마음을 너희 둘과 이야기하다 보면 알아차릴 때가 많았어. 언니 같기도, 친구 같기도, 때로는 동생 같기도 한 너희들에게 돌아보면 받은 것만 잔뜩인 것 같아. 너무 고마워, 사랑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전합니다! 제 장례식은 치르지 말아 주세요. 장례식을 한번 치러보니, 그냥 남겨진 사람들에게 부담만 지우는 일이란 걸 알겠더라고요. 그냥 저를 추억하며 - 제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어주세요. 그게 제가 긴 여행을 떠날 때 따뜻한 위로가 될 것 같아요. (+ 제사도 지내지 말아 주세요. 가끔 사진이나 보며 추억해 주세요.)
짧았지만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DH와 사랑하는 사이여서, 둘도 없는 친구 둘을 만나 행복했어요. 충분히 슬퍼하고, 또 많이 그리워해주시길. 또다시 딛고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새해를 맞이해 써 본 유언장입니다. 써보니 알겠어요.
오래오래 살아, 이들과 함께 늙어가야겠습니다.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