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일기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괴로울 때 글이 잘 써졌다. 독서도 비슷했다. 괴로울수록 책과 문장에 더 자주 매달렸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고,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을 쏟아내기 위해서였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적어두기 위해서였다. 이럴 때는 보통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문장이 줄줄이 나왔다.
오랜만에 2015년에 쓴 글을 다시 열어보니 너무 유치했다. 한창 연애 중이라 사랑과 이별 타령을 많이 했더라. 근데 2020년엔 또, 이런 글을 쓰기도 했었네 싶은 심도 있는 글도 있고, 2023년엔 어디서 베껴서 쓴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멋진 글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서 글은, 글로 남겨둔 나는 나의 나이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람의 흔적이 보이는 나이테.
몇 해 전부터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은 너무 문장이 늘어지고, 불필요한 문장이 많아서 읽을 때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은 뒤로는, 의식적으로 글을 깔끔하게 써보려고 했다. 그랬더니 성에 차지 않고 빈약한 느낌이 나는 거다. 그런 것들을 고려하다 보니 글이 써지지 않았다. 흰 페이지만 여러 번 노려보다가,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그냥 다음에 쓰자. 하고 모니터를 덮기를 여러 번.
그러다 친한 친구 J와 글쓰기 클럽을 시작했다. 결이 맞는 친구와 같은 주제로 글쓰기를 하자 마음 먹은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것을 써야할까 너무 고민스러워 마감 일자를 맞추지 못한 게 여러번이었다. 원래는 마음을 토하듯 글을 썼는데, 어떤 한 주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글로 써내려 가는 것이 낯설었다. 마인드 맵을 그려보기도 하고, 첫문단을 썼다 지웠다를 10번 이상 반복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얼추 글이 써졌다. 내가 쓴 글. 내 감정만이 담긴 글이 아닌 내 생각과 서사가 담긴 글이라는 게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둘이었다가 셋, 이제는 넷이된 글쓰기 클럽 작심사녀. 느슨하지만 꾸준하게 글쓰기를 위해 작당모의하는 이들과 함께하면 언제까지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포근한 생각이 든다.
나는 글쓰기가 요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행위라 좋다. 타인의 생각을, 내 생각을 대화보다 긴 호흡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당신들과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싶다. 언제가 되었든, 타자칠 수 있는 나이까지는…
12월 31일에 글은 처음 써본다. 짜릿하고 차분하고, 기분이 좋다.
글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용하게 나의 나이테를 남기는 데에, 타인의 나이테를 살펴보는 기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