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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지영 Jan 28. 2021

촌스럽게 자랐으면 좋겠어.

2019년 1월. 호랑가시나무

 

나는 너희들이 촌스럽게 자랐으면 좋겠어.
골목골목 안 가본 길을 걷다 지각도 해보고,
작은 벌레를 쳐다보다 해지는 줄도 모르는,
말똥을 밟아서 풀에 신발을 쓸어보기도 하고,
잠자리채 몇 개 부러뜨리기도 하는,
먼 훗날 어느 곳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한여름 땡볕 아래 폴폴 마른 흙냄새와
비가 내린 후 진득한 풀냄새를 떠올릴 줄 아는
그런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어.




   나는 운이 좋게도 시골에서 자랐다. 지네를 잡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과자로 바꿔먹기도 하고, 삼동(상동)을 따 먹으러 산속에 다니기도 했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부모님 시절 이야기인 줄 안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 던져놓고 개구리 잡으러 나가기도 하며 마을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다. 나는 다시 내가 낳고 자란 시골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단다. 더 이상 시골이 시골답지 않아졌다.


  는 촌스러움이 투박하고 순수해서 좋다. 세련된 것을 끊임없이 쫒아야 하는, 그 피곤함을 던져버릴 수 있는 자유를 사람들은 잘 모른 채 비아냥거린다.


  제주도 해녀들 사이에서는  ‘저승 돈 따다가 이승자식 공부시킨다’라는 말이 있다. 물속에 들어가 숨이 가쁜 순간에도 더 큰 전복이 저 밑에 보이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자식 생각에 더 깊이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만큼 생과 사 갈림길 사이에서도 자식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만큼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는 심상치 않아졌다. 언젠가부터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불필요한  것이라고  간주해  버리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목표가 되어버렸다.


  몇 년 전 , 숲 인근에 사는 보성초, 금악초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회차 수업을 여러 차례 시도했었다. 근처에 살기에 많이 알 것이라 생각했는데 숲의 나무뿐 아니라 부모님들이 직접 농사짓는 마늘과 깨, 파, 브로콜리 등도 땅 위에 심겨있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나는 하얀색 무꽃과 샛노란 브로콜리 꽃다발을 보고 무슨 식물인지 묻는 아이들에게 놀랐고, 아이들은 우리가 먹는 브로콜리가 사실은 꽃봉오리라는 사실에 놀랐다. 시골에 살고 있는 아이들조차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농작물이 어느 시기에 열매를 맺는지, 들판에 핀 아름다운 꽃이 어떠한 향기를 품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더 이상 아이들이 동네 구석구석을 뽈뽈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주시내 중학교 아이들이 환상숲으로 소풍을 왔을 때의 일이다. 제주 자연과 관련한 O, X 퀴즈 문제들을 냈다. 90여 명의 아이들이 문제를 낼 때마다 일제히 한 여자 아이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답이 정답이 아닐 때조차 곁눈질로 그 아이를 따라 하며 답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보성초에서 내가 가르쳤던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래 친구들이 인정할 만큼 자연과 식물에 대해 잘 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한 달에 한번 남짓, 몇 차례 되지 않는 수업을 했지만 그 적은 시간을 계기로 주변과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그 아이의 인사를 듣자 코끝이 찡해졌다. 그 아이가 지식적으로 자연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기쁜 게 아니었다. 전혀 관심 없던 아이가 어느 순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것을 뿌듯하게 여긴다는 점이 너무 사랑스럽게 보였다. 내가 환상숲에서 일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를 꼽으라면 그 순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 같다.


  유치원, 초등학교 시기에 형성된 인식과 태도는 생애를 통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릴  때  가졌던  자연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탐구학습들이  미래에  자연을 보존하고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함께 나아가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해로를 개발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북극 빙하를 빨리 녹일 수 있을지 연구하는 사람들은 분명 우리가 착한 아이라고 여겼던  1등만 했던 아이였을 것이다. 비록 회색빛 빌딩 사이에서 크는 한이 있더라도 푸른 하늘과 초록 식물들을 조금이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준다면 조금 더 예쁜 생각을 하고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자연 속에서의 삶이 잘난 사람을 만들지 못하지만 좋은 사람은 만드는 것 같다.


숲에서 만난 생명 – 호랑가시나무
 

  크리스마스 카드에 종종 등장하는 초록색 잎사귀와 빨강 열매가 있다. 바로 호랑가시나무이다. 잎에 돋아난 가시 모양의 톱니가 호랑이 발톱처럼 매섭게 생겼다. 로마에서는 존경과 사랑의 의미를 담아 호랑가시나무를 선물한단다. 서양에서는 집안에 이 나무를 심거나 걸어두면 재앙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날카로운 가시로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라 여겼다니 동서양에서 고루 사랑받는 나무 같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가정의 행복과 평화이다. 새해 소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골 멘트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바라는 소망이면서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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