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성우 공채 1차 시험은 모든 방송사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그렇지만 내가 응시를 했던 2009년도 겨울만 해도, 공채 시험의 시작은 ‘현장 접수’였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을 피하며 들어간 KBS 신관 2층 라디오 공개홀 앞 로비.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오후의 햇살 속에서 먼지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선명하다.
접수장이라고 하면 시장통 같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생각 외로 평온한 분위기다.
두꺼운 코트나 외투를 입은 20~30명쯤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력을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원서는 현장에서 배부됐다.
접수비나 원서비도 없었지만 그 흰 종이가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바른 글씨로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지만 펜촉은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덜덜 떨렸던 것도 같다.
실수하면 다시 받을 수는 있지만, 첫 줄부터 틀려서 원서를 구겨버리면
왠지 이번 시험에서 나도 구겨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도 그랬다. 매년 원서를 낼 때마다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다.
사진 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닐 텐데도 마음이 그랬다.
그렇게 KBS에 낸 내 증명사진이 어느새 세 장째였다.
접수는 보통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그리고 그해 전속 성우들이 그 수고를 도맡는다.
원서를 받는 그들의 차분한 미소, 혹은 사무적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월요일 오후쯤, 접수처를 방문했던 거 같다.
‘내 목소리는 오후가 낫다’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이전 세 번의 시험은 모두 오후에 봤었다.
(시험 대본은 오전과 오후가 달랐다.
오전 시험이 끝나면 대사가 유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내 첫 시험은 오후였다. 그때는 그저 떨리고 흥분된 상태에서 치러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저 입을 떼자마자 “됐습니다”하는 심사위원의 말만 강렬하게 기억난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시간이 밀리고, 사람들에 치이며, 체력이 급격히 꺾였다.
그럼에도 세 번째 시험 역시 오후 대본을 택했다.
‘아침 대본이 나오면 왠지 오후 대본도 비슷한 분위기 일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밀려 길어질수록 정신력과 체력이 동시에 바닥을 쳤다.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된 몸을 느끼며 “다음엔 무조건 아침이다!”라는 나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오전 시험을 선택한 뒤 중요한 건, 부스에 들어가는 순서였다.
부스에는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대기하다가 한 명씩 연기를 해 보인다.
하지만 나 같은 쫄보는 절대로 첫 번째로 할 수 없다.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절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물론, 다른 사람이 연기할 때 내가 따로 대본을 볼 수는 없다. 그 정도는 공평해야지.
그러다 보니 원서 접수처는 사람들의 눈치싸움으로 늘 묘한 기류가 흘렀다.
1번 혹은 6번을 선택할 용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 용자가 나타나면, 사람들 고마운 마음으로 그 뒤에 우르르 줄을 섰다.
그렇게 나는 3번째 자리를 얻었다.
내 딴에는 적당히 숨을 고르고,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나는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은, 꼭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