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현장접수가 있던 11월의 로비

by 성우 김태리

요즘 성우 공채 1차 시험은 모든 방송사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그렇지만 내가 응시를 했던 2009년도 겨울만 해도, 공채 시험의 시작은 ‘현장 접수’였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을 피하며 들어간 KBS 신관 2층 라디오 공개홀 앞 로비.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오후의 햇살 속에서 먼지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선명하다.

접수장이라고 하면 시장통 같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생각 외로 평온한 분위기다.

두꺼운 코트나 외투를 입은 20~30명쯤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력을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해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원서는 현장에서 배부됐다.

접수비나 원서비도 없었지만 그 흰 종이가 어찌나 부담스러운지.

바른 글씨로 멋들어지게 쓰고 싶었지만 펜촉은 종이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아니, 덜덜 떨렸던 것도 같다.

실수하면 다시 받을 수는 있지만, 첫 줄부터 틀려서 원서를 구겨버리면

왠지 이번 시험에서 나도 구겨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진도 그랬다. 매년 원서를 낼 때마다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다.

사진 때문에 떨어지는 게 아닐 텐데도 마음이 그랬다.

그렇게 KBS에 낸 내 증명사진이 어느새 세 장째였다.


접수는 보통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그리고 그해 전속 성우들이 그 수고를 도맡는다.

원서를 받는 그들의 차분한 미소, 혹은 사무적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월요일 오후쯤, 접수처를 방문했던 거 같다.

‘내 목소리는 오후가 낫다’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이전 세 번의 시험은 모두 오후에 봤었다.

(시험 대본은 오전과 오후가 달랐다.

오전 시험이 끝나면 대사가 유출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내 첫 시험은 오후였다. 그때는 그저 떨리고 흥분된 상태에서 치러서 힘든 줄도 몰랐다.

그저 입을 떼자마자 “됐습니다”하는 심사위원의 말만 강렬하게 기억난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시간이 밀리고, 사람들에 치이며, 체력이 급격히 꺾였다.

그럼에도 세 번째 시험 역시 오후 대본을 택했다.

‘아침 대본이 나오면 왠지 오후 대본도 비슷한 분위기 일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대기 시간이 밀려 길어질수록 정신력과 체력이 동시에 바닥을 쳤다.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집에 돌아와 녹초가 된 몸을 느끼며 “다음엔 무조건 아침이다!”라는 나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오전 시험을 선택한 뒤 중요한 건, 부스에 들어가는 순서였다.

부스에는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대기하다가 한 명씩 연기를 해 보인다.

하지만 나 같은 쫄보는 절대로 첫 번째로 할 수 없다.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절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물론, 다른 사람이 연기할 때 내가 따로 대본을 볼 수는 없다. 그 정도는 공평해야지.


그러다 보니 원서 접수처는 사람들의 눈치싸움으로 늘 묘한 기류가 흘렀다.

1번 혹은 6번을 선택할 용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 용자가 나타나면, 사람들 고마운 마음으로 그 뒤에 우르르 줄을 섰다.

그렇게 나는 3번째 자리를 얻었다.

내 딴에는 적당히 숨을 고르고,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였다.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나는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은, 꼭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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