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MBC아카데미를 찾아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어둡다’였다.
분명 시설은 깔끔했을 테고, 조명도 밝았을 텐데.
마음이 설레지 않고 묘하게 가라앉았다.
상주하는 선생님은 없었고, 강사가 주말에 내려와 수업하는 시스템이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택지가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좀 억울했다.
꼭 서울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보다 선택지가 더 많은 곳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심란했던 거 같다.
지방에서 성우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을 거다.
서울행.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가벼운 선택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강한 사투리 억양을 스스로 교정하기도 어렵고, 정보도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단순하게도 KBS 성우 시험을 칠 것이니 KBS아카데미를 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 수업은 초급과 고급을 포함해 약 6개월.
머물 곳이 필요했다.
운이 좋게도 외삼촌 댁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외삼촌은 출장을 많이 다니는 직업이셨고, 여동생(엄마)이 부탁을 하니 흔쾌히 들어주신 모양이다.
그런데 과연 외숙모와 사촌 동생들도 그랬을까?
머리가 크고 나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호의인지 느낀다.
방이 두 개뿐인 집에서 너무 무례하게도 객식구가 안방까지 차지했다.
그렇게 6개월 이상 함께 살아야 한다니 그들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교류도 없었던 서울 식구들이었기에 더 낯설었다.
그래도 몇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더 살갑게 굴었어야 했는데... 가장 마음에 걸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길 바라며, 또 반성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반성할 일이 너무 많네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 나는 말 그대로 동네 백수였다.
용돈벌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집 앞 책 대여점에서 주말마다 청소를 하고 카운터를 봤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사회성이 없고, 일머리가 없는 사람인지를.
지금 생각하면 사장님이 천사였다. 비록 나를 자르긴 하셨지만...
낯선 집에서 나름 눈치를 살피느라 반찬 하나 먹는 것도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점심은 늘 김밥이었다.
은박지에 싸인 갓 만든 김밥을 달랑달랑 들고 다니면 항상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렇게 낯을 가리는 내가 과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 왜 그토록 반대했는지 이해될 만큼 속이 쓰렸다.
그래서 지망생 시절을 떠올릴 때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은박지에 싼 김밥이다.
김밥을 담은 검은 봉지를 내려다보며 슬리퍼를 끌고 걷던, 서울의 뜨거웠던 여름 아스팔트.
내 성우 지망생 시절 첫여름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초라한’ 지망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거 같아 속상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치른 첫 시험에서 떨어진 겨울날에도 김밥을 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씩씩거리며 외쳤다.
‘이놈의 지겨운 김밥, 언젠간 안 먹고 말 테다. 꼭 합격하고 말 테다!’
돌아보면 그 해 여름과 겨울은 감사함과 미안함, 초라함이 뒤섞인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처음 자각한 계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은박지 너머로 느껴지던 김밥의 뜨근함.
내 서글픈 점심의 상징.
그리고 꺾이지 않을 내 단단한 다짐의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