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서울말 전환, 아직 수동모드입니다.

by 성우 김태리

지방 사람이면 무조건 공감할 것이다.

“나는 사투리를 안 쓰고 있는데 왜 다들 내 고향을 알아볼까?” 하는 그 억울함!

나도 딱 그랬다.


내가 TV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내가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얼마나 많이 따라 해 봤는데!

동생 앞에서 완벽한 서울억양으로 연기를 했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서울말 좀 한다~”하는 은근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KBS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선보였을 때,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

“사투리부터 고쳐야겠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 사\투/리/ 안\ 쓰/는/데/요?\”


...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어이없음’이었다.

선생님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게 아직도 생생하다.

속으로 반항심이 일었다.

‘내가 얼마나 완벽하게 서울말을 구사하고 있는데!’


그건 무지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사투리라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던 나의 말투를 다른 지방 사람들과 비교해 보고서야 알았다.

...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사실 어마어마하게 달랐겠지만, 당시의 깨달음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어느 지역 사람인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경상도 분이시죠?”

그 후로는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듯이 한 땀 한 땀 억양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서울 출신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TV드라마나 뉴스를 교재 삼아 외우다시피 따라 했다.

지금 연기 선생님으로서 조언을 하자면,

억양이 심한 분들은 ‘평서체, 평조로 읽기’를 추천하고 싶다.


당연히 쉽지 않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억양들을 한 줄로 고르게 펼치는 작업이니까.


“한 음으로 읽으면, 로봇 같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말의 리듬’은 살려야 한다.

다만 그 억양의 폭을 줄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때는 나도 그 방법을 몰랐다.

‘한 음으로 읽어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꾸준히 연습했고, 결국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부산 사람인 걸 모른다.

“전혀 티가 안 나는데요?” 하고 놀라워한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


나는 지금도 표준어를 ‘외국어’처럼 사용한다.

작업모드, 방송 모드로 의식적으로 전환해야만 자연스럽게 나온다.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익숙한 ‘부산 표준어’가 자연스레 고개를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투리가 훨씬 편하다.

서울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살아 어느 정도 ‘방송용 표준어’가 몸에 익었어도 말이다.

아마도 고향말에는 내가 자라온 기억들과 감정들이 가득 담겨 있어서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도 녹음 전, 강의 전에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작업모드, 스타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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