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작다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목청 크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는데, 이상하게 연기만 하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실제로 수업 시간에도 “소리가 좀 더 잘 들렸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때는 그 가르침이 그저 내가 못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마음이 위축되니 몸도 같이 움츠러들었고, 소리는 더 작아져 가는 것 같았다.
이제 선생님이 된 입장에서 돌아보면,
소리보다 호흡이 훨씬 더 많이 새어 나가 울림이 사라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목에 힘을 주면 소리는 크게 나오지만 감정은 담기지 않았고,
어떤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낄 때면 호흡이 많이 나와 소리가 작아졌다.
그때는 그런 세세한 조절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이유 때문인 걸 몰랐던 때라 단순히 ‘내 목소리가 작구나’라고만 생각했다.
목소리의 힘을 키워야 했다. 그래야 좀 더 자신감 있는 연기가 나올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일단 학원에서 배운 발성 연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더부살이하는 처지라 집에서 큰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다.
지금처럼 연습실을 대여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학원에 찾아가 강의실 하나를 잡고 연습할 뻔뻔함도 없었다.
대형마트 문화센터가 있다는 것도 몰랐던 때라.
예전처럼 동사무소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없나 찾아봤다.
빨리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역시 길은 어떻게든 열리는 법이다.
동사무소 소식지에서 <민요▪판소리 강좌>를 찾아냈다.
너무나도 낯선 분야라 조금 고민하기는 했다.
가요나 성악은 익숙한 분야라, ‘어떻게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민요▪판소리’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니 편견 없이 즐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못 따라 하면 그만두면 된다.’라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문화회관을 찾아갔다.
수업은 전문적인 교육이라기보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 같은 분위기였다.
선생님이 선창 하면 모두가 따라 하는 방식으로, 몇 주가 지나니 나도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수강생 어르신들께서 싸 온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어르신들이 싸 오신 떡이나 따끈한 고구마, 신김치는 유난히 맛있어서 지금도 생각난다.
무엇보다 고마웠던 건, 돈 없는 백수였던 나에게 간식을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간식을 나도 사 와야 하나 하는 눈치조차 없던 내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그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이 수업에서만큼은 가장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중얼거리며 음정과 박자를 틈틈이 연습했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선 조금 더 크게 ‘소리’를 흉내 내곤 했다.
mp3에 녹음된 강의내용을 들으며 반복하기를 여러 번 했다.
어쩌면 성우 공부보다 조금 더 열심히 했던 거 같기도 하다.
복식호흡이니 공명 위치니 하는 이론은 몰랐다.
다만 몸으로 느끼며 민요▪판소리를 흉내 냈다.
어느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이렇게도 소리를 낼 수 있구나.’
그러다 보니 민요▪판소리는 나의 (소박한)‘개인기 목록’ 첫 줄에 남아 있다.
그때 망설였다면,
낯섦을 핑계로 뒤로 물러섰더라면,
지금 내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움츠러들어 있을 것이다.
작은 자신감초자 얻지 못했을 것이다.
‘편견 없는 한 걸음’.
‘못 하면 그만이라는 가벼운 마음’.
겁쟁이가 되어버린 지금 나에게도 필요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