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 룰루 랄라

뚜껑을 열어 버리고 퇴근을 합니다.

by 김성은

아침 9시에 출근하는 나는 저녁 6시 혹은 7시 사이에 퇴근을 한다.

일이 바쁠수록 시간이 휘리릭,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세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야 맞겠다.


"수고했어요. 내일 만나요"


사무실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나오면, 히죽 웃음이 나오고야 만다.

날씨도 제법 선선해졌고, 어떤 날은 노을이 분위기 있게 나를 반겨주기도 한다.


"그래, 뚜껑 한 번 열어볼까?"


20대 초반부터 타고 싶었던 늘 꿈꿔왔던 뚜껑이 열리는 차를, 마흔이 다되어가는 길목에 데려오고야 말았다.

오픈카를 사면 안 되는 이유들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데려온 까순이.

남들이 차 뚜껑 몇 번이나 번 열어본다고 그 차를 사느냐고, 실용적이지 않은 차를 지금 그 나이에, 애 키우는 아줌마가?

미세먼지다 뭐다 언제 열 수는 있을 거 같아? 하는 다양한 말들을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퍼부었다.

할부금 내줄 것도 아니면서, 기름 한번 넣어주는 것도 당연히 아니면서.

그렇다고 신차 출고 기념으로 방향제를 선물하지도 않았다.


요즘 퇴근길마다 느끼는데,

나, 정말, 너무 잘한 거 같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 마음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 것,

마흔이 다 되어가는 애 있는 아줌마인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픽하는 용기에 스스로 칭찬하고 있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 하고 퇴근길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어떤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오픈 에어링을 만끽하고 있으니.


신호가 걸려 정차 중에는 귀를 활짝 열어 놓는다.

뚜껑을 열지 않았다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들이 내 귀로 전달된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절로 힐링되는 가운데, 가벼운 바람이 내 살결을 터치하는 것.


'아, 이 맛에 이 차 타는구나.'

하며 하늘에 구름을 작품 보듯 잠시 감상한다.

사실 이토록 낱낱이 샅샅이 만끽하며 즐긴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한 일 년은 유리창을 올린 상태로 간혹 모자도 써가며 뚜껑을 열었더랬다.

용기 내서 사긴 샀지만 활용할 땐 다른 사람을 의식했던 거다.


요즘은 모든 유리창을 개방하며 퇴근길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내 퇴근이 더욱 즐거워진 거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기에.

내가 그 순간의 공기를 소유하고,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을 소유하고, 내 기분을 행복에 풍덩 빠트리는 것이다.

모든 걸 만끽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더군다나 요즘엔 애정 하는 목소리의 그분 노래를 적당한 볼륨으로 동행시켰으므로 행복감을 느끼는 게 배가 된 것 같다.

귀가 즐겁고 시야가 뻥 뚫려 눈이 즐겁고 가을바람의 감촉이 부드럽게 기분이 좋은 십오 분 남짓 퇴근길.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오는 길에 어디에 들려 뭐 좀 사 오라는 심부름이라도 시켜주면 좋겠다.

빨리 오지 않는다고 미세한 눈치싸움 없이 더 즐길 수 있는 영혼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그 순간.

퇴근이 즐겁다.


폴 킴의 목소리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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