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이 오는 비

내 마음 다스리기

by 김성은

태풍이나 장마 때 억수같이 비가 올 때가 있다.

태풍은 바람을 동반하여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고 또한 저녁부터 새벽에 많이 지나가니 아파트 생활을 하면 얼마만큼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부는지 뉴스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장마 때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우산을 쓰고 슬리퍼나 장화를 신고 잠시 잠깐 밖에 다녀올 때가 있다. 그때 마침 엄청난 비를 만나면,


‘하필 지금’

‘빨리 들어가야지’

‘괜히 나왔네’


하고 생각한다.

잠시 우산을 쓰고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빗소리 너무 좋다고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집안의 안락함이 먼저 떠오르고 우리 몸이 반응하여 빨리 집에 들어가고 만다.


올해 6월 즈음에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두 집이랑 함께 세 집이 나란히 사이트를 잡고 가는 캠핑이었다.

그런데 이른 장마로 비 소식이 있다고 뉴스에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최대 300mm가 온다나.

함께 가는 집 누구도 캠핑 취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므로 우리도 될 대로 되겠지 하며 출발했다.

금요일 일을 마치고 저녁 6시에 출발했는데 처음 30분은 비도 안 오고 기분 좋게 운전했다.

그런데 어떤 긴 터널을 나오자마자 억수 같은 비가 차 유리창을 때렸다.

깜짝 놀랄만한 비였다.

그때부터 30분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운전을 해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남편은 쫄딱 비를 맞고 텐트를 치고 큰 우산을 씌워주며 나와 딸을 텐트로 안내했다.


“세상에”


2박 3일 내내 억수 같은 비를 만났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

하늘이 하는 일을 내가 어찌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빗소리에 묻혀 다른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좋았다.

옆집 텐트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남편 코 고는 소리도 비가 잡아가 버렸다.

우리가 떠나는 날 오전 11시까지 내리다 비는 그쳤다.

또 한 번 엄청난 비를 만난 적이 있다.

국내도 아니고 무려 외국 섬에서.

필리핀의 보라카이 섬에서 5일 내내 비를 만났다.

스콜성으로 오는 비여도 거의 하루 종일 내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D-mall은 군데군데 물이 차서 조심히 지나가려 해도 마주치는 큰 웅덩이에 발이 빠지고야 말았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비 오는 보라카이도 나름 매력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 보라카이에서 이런 비를 만나볼까 하면서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을 다독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한국 가을에는 필리핀을 가지 않고 있다.)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창문을 꽁꽁 닫고 있으면 잠깐 내리는 비는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일기예보를 유심히 보다가 비가 내리는 날엔 일부러 창문을 열어 놓고 있다.

비가 오면서 집안 분위기도 감성으로 바뀐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지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는 김치전이나 육전 파전처럼,

프라이팬에 자연스레 기름을 두르게 된다.

특히 아무런 약속이 없고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에 비가 오면 너무 좋은 것 같다.

침대 위에서 물먹은 솜 마냥 게으름을 한껏 피우다 비 오는 날 어울리는 무언가를 만들어 먹고선 또 침대 위로 가거나 혹은 괜히 텔레비전도 한 번 틀어본다.



이번 주말엔 비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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