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카드생활을 해왔다.
체크카드도 아니고 무려 신용카드.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후에 갚아나가는 삶을 오랫동안 살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지고 자연스레 바뀌게 되었다.
있는 돈 안에서 소비를 하고 후에 갚아야 할 것이 없는 생활을 잠깐 해보니,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소비패턴이 정말 좋았다.
처음 느껴보는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카드로 신나게 긁을 때는 기분 좋을지 모르나,
그다음 달 카드 명세서를 받으면,
'내가 언제 이렇게 쓴 거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남편과 둘이서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도대체 이건 뭐지? 어디서 결제한 거지?"
불분명한 결제내역 품목에 당황하곤 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은 어쩌지? 그 날은 예외로 해야 하나?"
옛 버릇 남 못준다고, 생일이 다가오자 난 또다시 어떤 선물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 달 전부터 남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백화점에 갈 수는 없어서 평소 하지 않던 인터넷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뚜렷이 필요한 것은 없으나 갖고 싶은걸 찾다가 결국은,
"사주고 싶은걸 사줘"
하고 선택권을 남편에게 넘겨버렸다.
졸지에 남편은 밤마다 내게 사줄 선물을 고른다고 수많은 브랜드의 공홈에서 상품들을 보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물어보는 통에 내가 더 귀찮아질 노릇이었다.
생일 선물이니 나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고 그냥 살 수도 있겠으나,
나와 몇 년 살아본 결과, 받은 선물이 마음에 안 들면 결국 "환불"을 외치는 나와 몇 번 부딪히고는 바뀌었다.
결국에 남편이 사주고 싶었던 물건은 "체인 지갑"이었고, 그중에서 여러 개를 탐하기 시작했다.
체인 지갑은 나의 두 손이 자유로워지고 잠깐씩 어디 갈 때도 유용하지 않겠냐는 이유였다.
평소 가지 않던 브랜드가 물망에 올랐다.
디올과 루이비통에서 체인 지갑을 구매하게 되었다.
한 번에 두 개를 주문한 건 아니고.
루이비통에서 주문했는데 컨디션이 별로라 반품을 했고, 디올로 눈을 돌려 다시 주문을 했는데 또 지갑 이음새 부분이 터져있었다.
인터넷으로 산 물건들은 선지불 후공정이다 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구경한 시간만 아까워졌다.
생일이 일주일 전으로 다가왔던 날.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나를 데리고 잠깐 백화점에 다녀오길 남편이 원했다.
"잠깐 가서 살 거보고 바로 결제하고 나오자"
"바쁜데 그럴 필요 있겠나?"
"생일 선물 해결 못하면 내가 너무 힘들어질 거 같아서 그래"
KF94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 있는 내 얼굴에 미소가 일었는데 남편은 캐치를 했나 보다.
그 길로 나를 태워 백화점에 갔다.
10개월 만에 백화점에 가니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에 가서 '곧 겨울이니까' 하며 결국 목도리를 사 왔다.
지갑을 살 엄두는 못 내는 내게, 체인 지갑을 사러 왔으니 사서 가야 된다며 본인이 인터넷으로 골라 논 것을
매장에서 찾아 내게 보여주었다.
"괜찮네"
내 대답에 남편은 어려운 숙제 풀어버린 표정으로 구매해버렸다.
두 개의 쇼핑백을 고이 모셔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은 가벼웠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포장된 박스를 풀어보고 싶지가 않았다.
"과연 저 물건을 사서 내가 더 행복한가?"
의심이 일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물건들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렵게 지켜온 소비패턴이 무너질 뻔했던 순간이었다.
미안하지만 환불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다.
없어도 행복하다.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갖고 싶어서 사는 소비패턴은 확실히 근절할 수 있을 거 같다.
예전처럼 가지지는 않을 테지만,
에르메스. 너를 애정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