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고칠 수 없는 병
나는 역마살이 있다. 확실한 것 같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또한 비행기표를 사고야 만다. 특별한 계획도 없이 말이다.
가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표를 덜컹 사놓고는 가지 못해 수수료를 물고 환불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된다.
어릴 때부터 마흔이 다된 지금까지 고치지 못하는 병중에 하나다.
그때도 그랬다.
엄마가 홍콩을 못 가봤다고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날에 내 마음이 왜 어지러웠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사고야 말았다. 인천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그것도 엄마랑 간다고 두 장을.
"엄마, 홍콩 가자. 내가 비행기표 샀어"
"진짜? 며칠에 출발하는데?"
"몇 달 뒤에 출발하는 거야. 12월에. 가까워지면 다시 이야기할게"
엄마에게 자랑을 하고 엄마는 또 친구들에게 자랑을 분명했을 거다.
표는 여름에 끊었지만 출발은 겨울 즈음 언제였다.
표를 산 걸 잊고 지내다 출발 1~2주 전쯤 아차차.
도저히 일을 뺄 수 없는 내 상황. 그리고 또 별일 없이 순탄하게 지내고 있는 시점.(아마도, 나는 ‘홍콩을 꼭 가야 해?’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홍콩에 독감이 유행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이런, 홍콩을 가지 못하는 상황이 절로 만들어져 버린 거다.
엄마에게 무슨 말로 홍콩 여행의 취소를 알려야 하나, 큰 고민거리가 사라진 거다.
엄마가 엄청 기대하며 기다린 홍콩 여행이었으나 결국 한 장당 25만 원의 수수료를 내고 환불을 받았다.
말이라도 말걸. 설레발은 혼자 치고 기대했던 엄마만 섭섭하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을 고이 담으며 언젠가 홍콩에 꼭 함께 가자는 약속을 나 스스로 했다.
그 후로 내가 엄마에게 ‘어디 가자’라는 말을 하면 ‘웃기시네~’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고 6~7년 후쯤에 또 한 번 일단 사고 봤던 홍콩행 비행기표가 있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내 마음을 또 어지럽혀 놓은 탓이다.
자연스레 비행기표를 검색하다가 홍콩 왕복행 비행기가 15만 원. 클릭하고 들어가 보니 얼떨결에 자리까지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경우는 드물다. 엄마에게 미안함을 갚을 수 있겠다. 원하는 장소에 요금까지 착한데 표가 남아있다면 운명인 것이다.
일단 사고 보자. 그 이후에 어찌 되겠지.
늘 그렇듯이 선결제, 후 뒤처리 방법을 택했다.
이번에는 표도 4장을 샀다. 남편과 아이와 나와 친정엄마의 표를 누구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안 가면 어쩔 거야. 사놓으면 가겠지 뭐.'
위험한 내 멋대로의 비행기표 쇼핑이었으나, 다행히 진짜로 다녀올 수 있었다.
늘 비행기표를 일단 사고 보는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가보고 싶어서, 뭔가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여행은 내 인생에 피와 살이 될 거라는 합리화에 아까운 돈 아니야 하며 저질렀던 거다.
표를 사면서 내가 느끼는 나의 갑갑한 상황들이 놓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거 같다.
나는 일단 사고 보는 행동을 앞으로도 못 고칠 것이고, 그 버릇에 도움받아 어딘가로 떠 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떠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늘 어딘가에 있을 내 낭만과 추억과 여유로움을 기대한다.
어차피 여행 가서 돈 안 쓰면 다른데 쓰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물건 사는 걸로 잠시 행복을 맛보기보다 오랜 시간 곱씹을 추억을 만드는 거에 소비를 하기로 오늘도 난 결심한다.
고맙다. 카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