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그냥 사버리는 무엇들에 관하여
나는 전시회를 가거나 박물관을 가면, 마지막 코스가 괜히 더 설렌다.
마지막에 대게 기념품샵이 있다.
오랜 시간 유심히 찬찬히 둘러보고는 꼭 필요해서가 아니고 그냥 사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고야 말아 버린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나버린 잡동사니가 나에게 여럿 있는데 그중에 애정 하는 몇 가지를 풀어보려 한다.
1. 우산
나에겐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꺼내 드는 우산이 있다.
아마 우리 모두의 집에는 우산이 대여섯 개쯤 있을 것이다. 어디서 받아온 우산인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중 유독 특별한 우산이 우리 집 신발장 옆 공간에 살며시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 본태 박물관을 둘러보고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느껴지는 우산을 산 것이다.
가격이 무려 5만 원 가까이해서 고심 끝에 남편에게 선물로 받아낸 우산이다.
“비 오는 날이 더욱 즐거울 거야!”
그랬다. 출근하는 날 아침에 비가 오면,
“쿠사마 야요이 우산을 쓰고 나가야지”
하며 설레는 마음이 일렁이고 당당하게 우산을 펼쳐 들고 출근했다.
내가 스토리를 굳이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이야기가 담긴 우산에서 나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끼며 우두둑 빗소리를 듣는다.
그날의 제주에도 비가 왔었지. 본태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도 비는 내리고 있었다. 비 오는 제주의 공기가 전해지는 것만 같아 괜히 혼자 즐거워진다.
숲에 둘려 쌓인 느낌을 받으며 상쾌한 발걸음으로 출근한다.
코 끝에선 비 오는 날 제주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2. 노트
최근 들어 자주 애용하는 노트는 또 어떤가.
이 노트 역시 제주도에서 작품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집어 들었다.
시 엄마가 주신 용돈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계산을 하고 나왔다.
요즘 매일 밤 침대 옆에 두고 끄적이며 내 속마음 다 털어놓는 중요한 노트로 쓰고 있다.
표지를 볼 때마다, 또 중간중간 작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날이 회상되곤 한다.
추석 연휴 기간 찾은 그곳, 가을이지만 무더워서 한 여름옷을 입고 전시를 보러 갔더랬다.
나는 엄마인지라 아이에게도 충분히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중간에 낮잠 들어버린 아이를 데리고 박물관 안에서 두 시간쯤 있었다.
정말 실컷 작품을 보고 아이를 깨워 또 한 번 더 보고 나왔다.
마지막에 만족스러운 쇼핑을 한 탓인지 평소 먹지 않는 커피도 쓰지 않고 더 달콤했으리라.
말도 안 되게 비싼 노트였지만 내 꿈을 적는 노트로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아무리 비싸도 내 꿈보다 비싸랴.
3. 연필꽂이의 연필들
어디를 가든 간단하고 간편하게 사 오게 되는 연필들. 그렇게 사온 연필들이 내 서재방에 자리 잡고 있다.
더 이상 사지 않아도 되는데, 필요해서가 아니고 사고 싶어서 또 사버리고 만다.
심지어 에버랜드에 가서도 연필 한 자루를 사 왔다.
늘 일기를 쓰고 무언가 끄적이며 메모하는 나에게 연필은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저기 많이 꽂혀 있어야 갑자기 무언가를 메모할 때도 쓱~ 뽑아서 당당히 적을 수 있다.
또 이 연필 저 연필을 쓸 때마다 추억이 달라서 어떤 연필로 쓸지 사뭇 진지해진다.
연필마다 필기감이 다르다.
더 부드러운 것이 있고 잘 닳아서 자주 깎아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
뾰족함을 유지한 채로 쓰는 걸 좋아해서 자주 연필을 깎는 편인데, 자동 연필깎이를 사용 중이라 생각보다 연필이 엄청나게 빨리 닳고 있다.
내 추억들이 다 닳아 없어지기 전에 얼른 전시회나 박물관 방문이 시급해진다.
당장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닌 필요하진 않지만 사버리는 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줄로 안다.
있는데도 또 사고 또 사는 건 왜 일까.
도대체 얼마큼 반복해서 사야 채워지는 걸까.
소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란,
정녕 어렵고도 먼길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