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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Lee Sep 17. 2020

나의 예술_좋아하는데 재능은 없어요.

선생님 우리 아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나요?


인생에서 성공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인생을 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산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성공이라고 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그것이 품위 있는 인생, 존엄한 삶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중 발췌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다. 그중에서 노래, 성악이라는 장르를 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 직업이 되버린 음악을 좋아해서 했느냐 또는 재능이 있어서 했느냐를  이제와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을 통해 내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더 나아가 직업적 소명 의식 또한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성악가(또는 예술가)로서 재능에 대한 욕구와 갈망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랑했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음악을 정말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다). 한때는 음악이 내 전부였고, 내 삶을 다 바쳐서라도 음악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랑하는 음악 외에도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조금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들이라면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성공은 성공이 아니고, 가족이 행복하지 않다면 책임없는 이기적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 이기 떄문이다.


가끔씩 주변 지인들에게 “나는 음악적인 재능이 없는 편"라고 말을 할 때면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했지만, 재능이-발굴이 안됐거나 더디거나-없는 편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음악을 시작할 무렵, 나의 피아노 선생님은 어머니를 조용히 불러 아이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말씀하셨다(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학 입시 시절, 5번의 재수를 거쳐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다 삼수생도 아니고 사수 생도 아닌 무려 5수생이었다. 한두 번은 그렇다 쳐도 세 번 네 번이 넘어가면 정말 그거는 가망이 없는 것이라고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다. 재수 삼수 때 이미 몇몇의 선생님들께 노래를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쓰디쓴 설득을 당해야만 했다. 나도 나였지만, 음악 공부를 시키기 버거웠던 가정 형편이 가장 문제였다. 그랬던 내가,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후에는 가방끈 무지 길게 미국 석.박사까지 마쳤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나는 스스로 재능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는 좋아함 이요 둘째는 꾸준함과 자격지심 이요 마지막으로는 부모님의 끝없는 믿음과 뒷바라지였다(자식이 그토록 미쳐서 좋아하니 빚을 내서라도 시키고 싶어 하셨다). 그 3박자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좋아하니까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애증이었지만 애증도 사랑이기에 꼭 안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그만 둘 수 있나’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내 인생을 심히도 괴롭혔지만, 그래도 좋아하니까 버틸 수 있었다. 동시에 자격지심도 있었다. 뒤처지고 무시당하는 것이 싫었다. 그러다 보니 늘 연습실에서 살았다. 유학시절 영어가 안되고, 수업을 따라잡기 힘들어 밤늦게 도서관에 머물다가도 집에 갈 때는 30분이라도 연습실에 들려 연습을 하고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기숙사까지 가야 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기 보다, 내가 재능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더 큰 이유로는 없는 살림에 뒷바라지해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노래로 성공하고 싶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면 장사하러 나가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그만 둘 수도, 설렁설렁할 수도 없었다.


나에게는 열심히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찼다.


내가 재능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안 했을 것 같다. 예술의 경중과 깊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세계무대에 서지 않아도 반드시 나의 목소리와 음악을 좋아해 주는 이는 있기 마련이다. 그럼 나는 재능이 없더라도 노래를 하는 이유는 있는 것이다.


길어진 부연 설명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 이승희는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재능이 출중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어느 정도의 재능까지 이끌어 올리기 위해 부단히 공부하고 연습했을 뿐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조건 없는 믿음과 뒷바라지가 있었다. 좋은 목소리를 물려주신 부모님과 끝까지 믿어주시고 지지해 주신 부모님께 제일 감사하다. 현재는 가장 큰 지지자가 돼주는 아내에게 또한 감사하다.




가끔 학생의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통적인 질문을 받고는 한다. “아이에게 음악을 시켜도 될까요? 우리 아이가 재능이 있나요?”


분명히 말하지만 아이가 음악을 하는 것은 부모님의 몫이 아니다.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음악을 시킨다고 하는 표현이 잘못 됐다. 이것은 아이가 하는 것이다. 단지 아이가 방향을 잡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줄 뿐인 것이다.


아무리 어릴지라도 아이들은 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막상 레슨을 시작해도 열의에 차서 하는 학생이 있는가 반면 억지로 시켜도 안 하는 아이가 있다. 또한 음악적 재능에 두각을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반면, 정말 아무리 설명하고 가르쳐도 제자리걸음인 학생이 있다. 내가 부모님께 해드리는 말은 늘 같다.


"아이가 원하시면 시키세요. 그리고 그 아이의 태도를 보세요. 정말 좋아해서 푹 빠지면, 그 좋아함이 곧 재능이고 그 재능은 계발될겁니다."




우리 모두가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들 어떠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신껏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삶이 아니겠나. 나는 매일 발견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의 생각과 삶과 철학이 변해가며 나의 목소리도 변해간다는 것- 이 나이와 경력에도-을 보게 된다. 반복되는 연습과 공부를 통해 내 음악적 감각이 아직도 살아서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


나는 계속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소신을 갖고 살 것이다. 어찌 됐든 끝까지 가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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