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tlionheart Dec 15. 2023

<비몽사몽 간에..>


요즘은 초등학교 외부 강사 공고가 나는 시즌이다. 오늘까지 마감인, 드물게도 총 학생 수가 천 명이 넘으면서, 집에서도 30분 이내 거리의 학교 모집 공고를 어제서야 발견하게 되었다. 모집단인 총 학생수가 많으면 상대적으로 방과후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 수가 많아져서 그만큼 강사 수입도 늘어나게 된다.


내년이면 방과후 강사 3년 차가 되지만, 서류 작업은 아직도 미숙하다. 이력서 외에도 운영 제안서, 연간 운영 계획서를 저학년반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학교마다의 포맷에 맞추어 분기별로 작성을 해야 한다. 독수리 타법은 벗어났지만 아직도 타자 칠 때 오타가 자꾸 나서 답답할 때가 있다.


새벽 두 시 넘어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대학교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접속해서 비번 찾기를 하고 최종 학력 증명서까지 뽑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경력 증명서까지 다 챙겨서 누런 서류봉투에 넣고 봉인을 했다.


보통 이메일로 접수를 받는데,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직접 서류 봉투를 들고 학교 교무실에 가서 제출하게 되어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담당자가 각 강사들의 서류를 인쇄하고 묶는 과정이 귀찮아서.라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구직하는 아쉬운 사람이 좀 더 수고스러우라는, 그러고도 일하고 싶으면 직접 오라는 갑질의 다른 모습일까.


세 시간쯤 잤으려나.. 비도 오니 몸은 축축 늘어지지만, 오전 중에 접수시키고 신경을 끄고 싶어서 부지런을 떨며 머리를 감고, 귀찮았지만 예의상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차창을 때리는 빗속을 운전하는데 잠을 못 자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초행길이라 고속도로에서 IC로 나와 그 학교가 있는 행정구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방 보일러와 온풍기를 틀어놓고, 빨아놓은 얇디얇은 여름 원피스 잠옷을 꺼내 갈아입고, 짧은 로브를 걸쳤다. 전기 포트의 끓는 물을 부어 얼마 전에 선물로 받은 TWG French earl grey 티를 우렸다. 찻잔을 들고 암막커튼 사이 창틈으로 들어오는 어둑어둑한 빛으로만 보여지는 란탄 테이블 위에 잔을 놓고, 몽골 캐시미어 담요를 접어 푹신하게 만들어 놓은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잠시 지난 2년 간의 강사생활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학교는 새로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 앞에 위치해 있었고, 학교도 지어진지 얼마 안돼 보였다. 아파트 지을 때 같이 지어졌으리라.


나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편견 없이 보고 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 강사 일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은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이 아이들의 학습능력과 인성, 예절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그 부모의 그 자식'인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지원서를 무작정 넣지 않고, 모집 공고가 나면 그 학교 배정 지역이 어떤 곳인가를 먼저 검색하여, 어느 정도 평균적인 범주에 들어온다고 판단이 되면 지원서를 넣고 있다.


이런 얍삽한 짖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몸으로 겪어보고 마음에 상체기가 겹겹이 쌓이게 되면, ‘내가 나를 보호해 줘야지. 아무도 나를 편들어 주지는 않는다’라는 응집된 생각만 남게 된다.


때로 편견은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이지 수초 안에 판단하여 나를 방어하는 한 방법으로 쓰일 수도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인지편향(cognitive bias)'으로 밝혀지더라도, 하나의 보호막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송년 모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