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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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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Feb 03. 2024

세미나를 따라다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었다. “coffee_artery‘ 아, 손이 오그라드는 이 느낌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날의 기억에 따라 저런 계정 이름을 만들었었다. 인스타그램에 커피 관련 일을 한다고 보이면 일단 팔로잉을 하고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생두를 발효하는 프로세싱에 대한 세미나가 부산에서 열린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나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어떤 화학작용을 거치게 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무작정 부산행 기차표를 끊었다.


스무 살에 남편을 만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팔 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하게 된 나의 정신연령은 남편을 만난 이십 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다. 출산과 함께 주부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거의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면서 살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려고 해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게 버거워서, 남편이 꼭 데려다줘야 했었다. 또, 나의 극소심함과 과도한 수줍음으로 인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스트레스가 되어, 아이들 엄마 무리에 섞이는 게 힘들었었다.

이런 내가 혼자서 부산을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부산행 표를 끊었다고 하니 남편이 자기도 같이 가겠다면서 표를 한 장 더 사라고 하면서 따라나섰다. 함께 해온 날들이 내 생의 1/2 이상인데, 딱 보기에도 내가 너무 이상해 보였고, 아마도 의심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


세미나 장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커피 학원이었다. 연사는 대학교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슬라이드에는 중남미에서 생산한 생두를 발효시키는 프로세싱의 원리, 장치, 실험조건 등등이 담겨있었다. 세미나 말미에 나는 그동안에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 냈는데, 너무 질문을 많이 해서인지 그날 동석한 젊은 친구들의 분위기가 싸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거기서 생전 해본 적도 없는 커핑(cupping)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원두를 일정한 굵기로 그라인딩 해서 커핑볼에 담고, 92도의 뜨거운 물을 부어 4분 동안 커피를 우려낸 뒤, 커핑볼 위에 뜬 커피 입자들을 걷어내면서 일차로 향을 맡고, 8분 때부터 커핑스푼으로 한 스푼씩 맛을 보면서 구체적인 맛과 향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시간에 따라서 뭔가 맛이 변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 지도 몰라서 당황스러웠고 위축이 되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 젊은 여학생이 이것저것 설명을 해쥤다. 내가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간에 이렇게 말이라도 주고받으니 나의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덜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며칠쯤 지났을 때 그 교수님의 피드를 보니, 피드 사진에 “흑빛의 얼굴에 아줌마 패션”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고, 멀리 경기도에서 와주신 분도 감사하다고 씌여 있었다. ‘내가 인상적이었나 보다..’ 생각하면서 반가웠다고 댓글을 달고 맞팔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서울에 있는 월간커피에서 종종 듣고 싶은 세미나를 골라서 수강 신청을 하고, 서툰 운전을 하면서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카페쇼는 물론이고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월드 리더스 포럼의 각종 세미나도 참석했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은 점점 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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