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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커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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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Feb 03. 2024

첫 번째 커핑 수업

 

모닝 루틴으로 스타**에서 여전히 책을 읽고, 쉬는 시간에는 인스타그램을 뒤지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오전 시간은 아이 학교에 픽업을 가기 전까지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릳츠에서 커핑수업을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수업료는 백만 원. 전업 주부에게는 꽤 큰 금액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십만 원도 큰돈이었다. 그래도 내 아빠가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게 있어서 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불행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내 얼굴이 너무 싫어서, 압구정의 유명한 의느님을 소개받아 타고난 쌍꺼풀을 고치고 눈매 교정도 받았다. 또, 유튜브 튜토리얼 메이크업 영상과 스타일 채널을 보면서 내 스타일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있었다. 아직 능숙하지 않았던 화장법은 점점 더 진한 화장을 하게 만들었고, 정해지지 않았던 스타일로 인해 옷과 주얼리를 계속 사들이게 만들었다. ‘내가 이것도 못 사냐?’ 이런 마음으로 말이다. 내 외모에 집중하는 이 시간과 소비가 즐거웠고,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면서 길을 걸을 때 땅만 쳐다보고 걸을 정도로 바닥을 쳤던 내 자존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첫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면서 눈빛이 이글이글 반짝이는 여성분이셨다. 아직 부기가 덜 빠진 쌍꺼풀에 진한 화장과 향수 냄새를 풍기는 내 정체가 의심스러웠는지, 나눠준 수업 자료에 나오는 영어 단어들을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요오드가 영어로 뭐예요? "

"Iodine(아이오다인)."

"거기 냄새가 뭐라고 쓰여 있어요? "

"Odor(아더)."


그럴 정도로 내 외모는 눈에 뜨이게 되었다.


커핑 수업은 주로 네 개의 원두 샘플을 커핑볼에 준비해서 진행이 되었다. 어느 날은 커핑볼에 담겨진 그라인딩 된 원두 냄새를 맡아봤는데, 샘플 배열이 1번과 3번의 향이 유사하나 1번이 약, 3번이 강이었고, 2번과 4번의 향이 유사하나 2번이 약, 4번이 강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선생님은 일부러 그렇게 배치를 하셨다고 했다. 또 어떤 날은 네 번째 샘플이 고약한 강한 향이 나서, “이거 로브스타예요? ” 물었더니 맞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젊은 커피 전문가 선생님에게서 예쁨을 받으면서 수업을 들으러 가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었다.


커피맛을 표현하는 방식과 단어들은 마치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와 같았다. 꽃향, 산미, 단맛, 쵸콜릿맛, 견과류, 곡류, 허브 등으로 구분되고, 꽃향은 쟈스민, 아카시아 등으로, 산미는 또 레몬, 씨트릭, 오렌지, 애플, 피치, 그레이프 등등으로, 단맛은 슈가, 브라운슈가, 허니, 메이플 시럽 등으로 구분되었다. 바디감과 질감까지 표현을 해야 하니 복잡할 뿐만 아니라, 빠른 시간에 그 맛과 향을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 수업이 몹시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핑으로 맛을 구분하는 게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될 줄은 모르는 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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