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여느 일요일과 다를 것 없는 서늘한 늦겨울의 저녁 시간이었다. 식탁을 치우고 한가득 쌓인 설거지를 끝낸 후에, 암막 커튼으로 인해 조금의 불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아지면서, 내 몸은 쉬이 지치고 피곤함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물을 가득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거실에서 가족들이 크게 틀어놓은 티비 소리와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쿵쿵 들려 신경이 거슬렸다.
웬만해서는 형광등을 켜지 않는 내 방은 어두움 그 자체다. 몸을 일으켜 세워 침대 옆 작은 검정색 등을 켜고, 발을 질질 끌면서 맞은편 책상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의 또 다른 작은 하얀색 등과 한 뼘 남짓한 흰색 캔들 워머의 등을 밝히자 방 안은 부드러운 불빛으로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여기에 온풍기가 뿜어내는 백색소음과 따뜻한 공기가 뒤엉키고 있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사그락거리는 살구색 오리털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고 누웠다. 들릴 듯 말 듯 스피커에서 나오는 히사이시 조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피아노 연주로 들으며, 일요일 초저녁에 선잠이 들은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몸이 매트리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서너 명의 인물들이 연못의 연꽃처럼 부유하면서, 무중력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처럼 천천히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애써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조용히 물 위를 유영하면서 그들을 지켜만 봤다.
그 장면 속의 나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의 시간이 한 템포 느려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내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이제서야 나의 세계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 상에서 깨어났을 때, 몇 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단단한 안정감이 느껴졌고, 나는 현실로 돌아와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삼 개월 후에 이 글을 쓰면서도 또렷이 기억나는 그 장면은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꿈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