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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Mar 25. 2024

언니가 왔다 4


언니가 오면 그동안에 소원했던 이모님들과 사촌들과의 연락이 빈번해진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언니는 성인 ADHD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집안에서도 부산스럽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메일 업무를 보면서 영어와 한국어 유튜브 채널을 돌려가며 듣고, 갑자기 종목을 바꿔 스페인어를 노트에 쓰면서 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아침 10시에 예약해 놓은 운동을 하러 나가면 그제서야 나는 내 정신을 챙길 수 있다. 부지런하게도 도착한 날부터 내가 다니는 운동 센터에서 필라테스 10회권을 끊어서 횟수를 꽉꽉 채워 수업을 듣고 있다. 또 그 사이사이에 서울, 부산, 거제도, 광주를 찍고 다시 수원과 서울을 오가고 있다.


부산과 거제도는 35년 지기 대학 친구들과 매년 가는 여행의 목적지였고, 광주는 이모님과 사촌 남동생을 만나기 위해서 갔었다. 어제는 막내 이모님과 이모부님을 뵈러 서울의 한 스시집으로 언니를 모시고 갔다가 다시 부모님 댁으로 데려다 줬다. 나는 도합 운전 세 시간을 하고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슬라이딩을 했다. 더 이상 차는 못 타겠어서 남편 혼자서 딸아이를 숙소로 데려다주게 되었다.


막내 이모님은 대전에서 한평생을 사셨지만, 귀한 막내아들의 외동딸 육아를 위해 성남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한다. 황혼육아가 올해로 칠 년째이신데, 대전과 분당을 오가시며 육아를 해오시다가 힘이 드셔서 아예 아들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셨다고 한다. 사촌 올케인 아이의 엄마는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다가 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해서 일학 년일 때 사촌 남동생과 결혼을 했다. 사촌 남동생은 훤칠한 키에 훈남 외모에 전문직 종사자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여자 조건을 너무 본 것 같다. 아이 엄마는 후덜덜한 사학재단 집안 딸인 데다가 사촌 남동생 보다 아홉 살이 어리다. 의대 다니면서 아이를 하나 낳고서는 서울 본인의 본가에서 주중에 학교를 다녔고, 주말에만 아이가 있는 집으로 오면서 칠 년을 보냈다. 현재는 국가고시 재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새 이모님은 칠십 대 후반이 되었고, 이모부님은 팔순이 넘게 되었다. 집안일하는 사람을 아들 집으로 일주일에 두 번 부른다고는 하는데,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쓰신다고 하신다.

사촌 남동생은 부인에게 불만이 없냐고 이모님께 물었더니 이모가 말을 아끼시며 “너가 콕 찝어서 얘기를 하는구나..”라고 하시는데, 이모 표정이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촌 남동생도 일주일에 두 번은 부원장에게 병원을 맡겨놓고 아이스하키며 스케이트를 타러 다닌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가슴속에서 부화가 치밀었다. 부성애,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아이와 부대끼면서 생기는 것인데, 자기 자식은 노쇠한 부모님께 맡겨놓고 뭐 하는 짓들인가 싶었다. 내가 한 치 건너인 관계이기도 하고, 내 가정 돌보는 것도 어려움이 있으니 남의 가정사에 배 놔라 감 놔라 할 수도 없기에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나무숲에 외치듯이 여기에 쓰고 있다. 가정을 꾸렸으면 있는 힘을 다해 서로의 책임을 다 하라고.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 한참 엄마, 아빠 사랑을 듬뿍 받을 나이에 그렇게 커야 되는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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