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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Apr 07. 2024

‘식빵이'와 '사브레'


목요일 저녁에 데려온 딸아이는 밤에 나가더니 생각보다 일찍 집에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는다. 방문 안의 기운이 평소와 다르게 뭔가 은밀하게 느껴졌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궁금해서 당장 방문을 열고 싶었지만, "엄마=눈치 없음"의 공식이 완성될까 봐 꾹 참았다. 한 시간쯤 지난 뒤에 딸아이 방문을 노크를 하고 얼굴만 빼꼼히 방 안으로 내밀었다. 방안을 쫙 스캔하다 보니 책상 위에 플라스틱 투명 케이스가 두 개가 놓여있다. 방문 밖에 어정쩡하게 놓여 있던 내 몸을 방 안으로 들여보내 의문의 플라스틱 케이스에 다가갔다.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움직임이 없다. 이때 딸아이가 말을 한다. 아니 통보를 한다. "나 도마뱀 두 마리 분양받았어. 자취집이랑 우리 집 오갈 때도 데리고 다닐 거야." 헉..도마뱀이라니..그것도 살색 그대로인 '누드 도마뱀(내가 붙인 이름)'이라니. 방문을 열었을 때 딸의 방에서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났었는데 그게 도마뱀 냄새였나. 그 생물들이 징그러워서 일단 얼른 문을 닫고 나왔다.


자정이 다 되어 다시 생각해 봐도 이거는 아닌 것 같아 가족 단톡방에 톡을 올렸다.

"같이 사는 가족들 허락도 안 받고 저런 파충류 혐오 생물을 집에 들이는 거 너무 예의가 없구나.

파충류한테서 치료도 못 받는 병균에 감염될 수도 있는데, 상식도 없고 생각도 없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고, 그걸 또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이고, 도대체 머리에 생각이란 게 있는 사람들이냐?"

파.알.못.인 나는 미지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제일 걱정스러웠다.


다음날 오전에서야 내 톡을 읽은 딸아이는 나를 보며 "자취집에서 심심하고 외로워서 도마뱀을 분양받았다. 제일 손이 덜 가는 것으로 정해서 데려온 거다."라고 했다.

'외로웠다고..?' 생각도 못한 답변에 나는 전투력을 급 상실하고 '세균 논리'를 펴본다. 돌아오는 답은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걱정부터 한다'였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일단 내방으로 후퇴해서 소파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단톡방에 “설마 이름까지 지어준 건 아니지?”라고 물어봤다. “식빵이와 사브레야”

'하..이름 지어줬으면 게임 끝난 건데.. 이거는 물릴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마뱀 만지고 나면 꼭 비누로 손을 잘 씻으라고 당부를 하며 일단락을 지었다.


토요일에 외출한 딸에게 어디서 뭐 하고 있냐고 묻자 홍대 앞 파티룸에서 게임 지인들과 놀고 있다는 답이 왔다. 아직은 징그러운 '그놈들'이 생각이 나서 딸아이 방에 들어가 봤다. 책상 위에 보여야 할 케이지는 안 보이고, 체크 담요가 몇 겹으로 올려져 있다. 담요를 살짝 들어보니 케이지가 보인다. 딸아이에게 담요는 왜 덮어놨냐고 톡을 보냈더니, 실내 온도가 25가 돼야 하는데 좀 추운 것 같아서 담요로 덮어놨다고 한다. 지금 몇 도냐고 묻길래 19.5도라고 했더니, 자기 방 히터만 좀 틀어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난방을 다 꺼야 되는 시기라서 그렇게는 못해준다고 답했다. 그럼 담요로 잘 싸두라고 톡이 왔다. 담요를 덮어주면서 잠시 케이지 안을 살펴보니 이놈들이 움직임이 거의 없다. 추워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약간 들었지만 담요를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


일요일 아침..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다 했는데 딸과 남편이 아직도 자고 있다. 딸아이 방문을 열고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책상 앞으로 간 나는 담요를 들어 올렸다. 케이지 두 개에서 두 놈 다 보이지가 않는다. 각각의 케이지를 180도 돌려보니 한 놈은 온도계 뒤판에 찰싹 붙어있고, 다른 한 놈은 케이지 벽에 붙어 있었다. ‘살아는 있구만’ 하면서 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식빵이와 사브레의 사진을.

식빵이 & 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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