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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n 06. 2024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


'날씨 좋은 휴일에는 다들 뭐 하나?'


미용해 줄 때가 돼서 "털찐이"가 돼버린 별이와 단둘이 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골프장으로 향하는 남편에게 "좋겠다. 요즘 2-3일에 한 번 꼴로 나가는 것 같네."라고 했더니, “이게 다 일 때문에 나가는 거야. 일 하러 가는 거야.”라고 뻥을 치며 남편은 승천하는 입꼬리를 숨기질 못했다.

그래도 나가기 전에 꼬질이가 된 별이를 씻기고 드라이에 빗질까지 해놓고 나갔다.


뽀송뽀송해진 별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날도 더운데 밖에 나가면 뭐 하랴’ 이러면서 친구 두 명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안 받는다! 다들 놀러 나갔나 보네.‘

'괜찮아. 나는 원래 집순이니까..' 이러면서 화창한 날씨에 혼자 집에 있는 상황을 정당화해본다.


별이에게 점수 좀 따 보려고 간식을 몇 차례 주게 되었다. 요즘은 간식 줄 때만 내 옆에 딱 붙어 있다가 자기 볼일 끝나면 침대 밑이나 남편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나를 자동 급식기 정도로 여기는 건지.. 여섯 살이나 됐는데도 배변을 잘 못 가려서 반은 패드 위에 누고, 반은 패드 밖에 아무데나 눠버린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얼굴은 참 예쁜데, 머리가 좀 모자른 건지 아니면 '나는 아무데나 누고 싶은데 눌 테니 너가 치워라' 이런 생각인 건지 속을 알 수가 없다.


쌓여있는 집안일을 외면하고 잠깐 낮잠이 들었다. 전기장판을 걷어낸 침대 패드는 살짝 차가웠지만 부드러웠고, 사각사각한 이불이 맨살에 닿아 잠이 들면서 기분이 좋았다.


일어나 보니 지금 이 시간이다.

어제 퇴근 후 밤 9시까지 학교 두 군데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 작업들을 마쳐 놓은 게 생각이 났다. 내가 PC 작업을 할 때, 남편은 소파에 앉아 야구 채널을 보면서 옛날식 통닭을 시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고 있었다. 작업이 끝날 때쯤 남편이 술이 올라왔는지 진심을 담아서 "소파에서 맥주 마시면서 일하는 부인 뒷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서운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내가 집에서 20년 육아를 하는 동안 남편이 밖에서 고군분투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쿨하게 너의 순간적인 감정을 인정해 줄게‘라는 마음으로 웃어넘겼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흑맥주 스타우트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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