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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tlionheart Jul 05. 2024

여름비


어제 폭우 예보가 있었다. 비 오는 시간이 점점 더 뒤로 미뤄지더니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야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시각에 나는 우리 집 뒤쪽에 있는 작은 공원을 배회하고 있다가 일 분 남짓한 시간에 빗물 샤워를 하게 되었다.

맨 살을 타고 내리는 빗물이 아침에 바른 선크림과 섞여 내려 미끄덩한 느낌이 들었다. 걷다 뛰다가 마지막에는 빠른 잔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얼굴을 아는 이웃 여자분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하다가 고개를 옆으로 떨궜다.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내 모습을 비춰보니 머리카락은 이미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고, 목이 깊게 파인 티셔츠 어깨가 젖어 내려와 왼쪽 속옷 끈이 삐죽 나와 있었다.

'뭐야..내가 너무 섹시해서 눈길을 피했나?'


집으로 들어와 습한 공기를 뽀송뽀송하게 만들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놓고, 맨 물 샤워로 빗물을 씻어냈다. 적당히 물기를 머금고 있는 머리카락 느낌이 왠지 좋았다.


자정이 되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내 방 커튼도 휘리릭 공중으로 들리고, 열어놓은 바깥 베란다 창문들이 덜커덩 거린다. 앞 베란다로 나가서 창문 한쪽만 남겨두고 나머지 창들을 꼭꼭 닫았다.

스탠드를 끄고 여름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커튼을 타고 살살 들어오는 바람과 적당한 크기의 덜컹거림이 솔솔 잠이 들게 해 줬다.


아침이 되었다. 클라리넷 연주를 듣다가 스피커를 끄고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들을 느껴 본다.

비가 지나가고 난 후 흐린 날 아침 특유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지나가는 아침새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베란다 창틀이 낮으막하게 흔들린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들어와 부드러운 맨살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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