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댁 근처에서 이른 내 생일 기념 식사를 했다. 재작년부터 아빠는 접촉 사고가 잦으셨는데, 우리에게 알리지 않으신 경우가 많았다. 운동 신경이나 반사 신경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아서, 운전하시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곳으로 예약을 했다.
식당 주차장 입구를 지나치셔서 길가에 주차를 하시고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방향으로 도착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계단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아빠가 한 손으로는 계단 난간을 잡으시고, 다른 한 손에는 내 생일 케익과 우리에게 주실 보리굴비 봉투를 들고 힘들게 올라오고 계셨다. 그 뒤로는 엄마가 지팡이를 짚고 더 힘들게 올라오고 계셨다. 얼른 내려가서 엄마의 팔을 부축하고 천천히 계단을 올라와 예약한 식당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함께 사실 때도 열 번 음식을 해드려도 한 번 칭찬을 할까 말까 한, 즉, 아홉 번은 음식 맛이 어떠하다고 불평을 하셨었다. 괜찮다고 이름난 식당에 모시고 가도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다고 하시면서 옛날에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제일 맛있었다는 얘기를 하시곤 하셨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여기 음식들이 입맛에 맞으셨는지 "맛있다"는 표현을 하셨다.
식사를 하면서 이번 추석 때는 부모님 댁에 못 가게 되었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시어머니가 최근에 병원에서 부정맥 진단을 받으셨는데 주치의가 "즐겁게 사시라"라고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의사의 말을 전하면서 "내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나 보다"라고 시누에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효녀인 시누는 그 말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시누와 남편을 포함하는 삼 남매들만의 단톡방에서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오고 갔다.
연휴 2주 전에 숙소를 정하려니 세 집 식구 13명이 묵을 곳을 찾기도 어려웠고 예약을 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격도 일박에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네다섯 차례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가네 마네 말들이 오가다가 결국 시누가 큰 규모의 독채 펜션 건물을 예약해 버렸다고 통보가 왔다.
펜션에서 묵으니 어쨌거나 아침밥은 해야 할 것 같았고, 추석 당일날 오전은 문 연 곳이 없을 테니 그날은 점심밥도 해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명절에는 차례 음식 만들고 치우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명절 음식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부모님도 노환으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아직 거동이 가능하실 때 사진도 찍으면서 좋은 추억 만들고 오는 게 좋을 듯했다.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당신 아들만 잘난 줄 아시고 모진 말로 나한테 상처를 많이 준 시어머니였는데, 건강하게 사실 날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하니..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간의 미움이 사그라들고, 시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니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나마 능력자이면서 효녀인 시누와 시누 남편이 있어서 인생 후반기를 풍요롭게 살고 계시니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그 시절에 시어머니가 나에게 조금만 잘해주셨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든다. 시댁만 갔다 오면 두통과 복통으로 타이레놀과 위염약을 먹곤 했었고, 잦은 부부싸움으로 이어졌었다.
남편은 아들들의 주 멘트인 “우리 엄마는 그런 말 할 분이 아니야.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너가 잘했으면 우리 엄마가 그랬겠냐”라는 말로 나를 비난하곤 했었다.
그런 말들에 아무것도 없는 집 아들인 남편 하나만 보고 연애하고 결혼을 했던 나는 큰 배신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렇게 내 결혼생활까지 위협했던 시어머니였는데..마음과 몸이 모두 약해지신 모습을 보니,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미움과 같은 감정들도 다 헛되고 덧없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