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딸아이를 이번주 초에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삿짐은 이번주 일요일에 이삿짐 센터를 이용하기로 했고, 폭탄 맞은 아이방에 자취짐이 합쳐지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리 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정리 업체의 견적을 받아 보니 수납정리 전문가 세 명이 필요하고, 8시간 동안 치워야 된다고 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업체가 갖고 온 수납도구나 옷걸이를 사용하게 되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고 했다.
일요일의 이사가 제일 큰 이벤트라고 예상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목요일부터 아이 안색이 창백하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어지러움증이 생겼다. 거기다가 변의 색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작년에 수술 부위의 내출혈로 상황이 급박해져 사설 구급차를 불러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향했었는데, 그때의 증상과 유사했다. 금요일에 서울대병원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보니 집 근처 응급실에 가서 혈액검사부터 받아보라고 했다.
동네에 있는 응급실에 도착하여 상황 설명을 하니 조금 후에 의사가 나와서 자기네는 2차 병원이라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오는데도 두 시간이 걸리니, 차라리 수술받았던 병원으로 바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마침 남편이 일찍 퇴근을 했기에 남편 차를 타고 퇴근길 교통 정체를 뚫고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접수 신청을 하고 입구에 있는 남자 간호사가 문진을 했다. 이 단계는 환자를 응급실에 들여보낼지 말지를 심사하는 단계였다. 부족한 의사 수로 인해 의료진의 과도한 업무를 방지하고자 하는 단계였다. 다행히 우리는 중증 환자로 분리되어 응급실 안으로 들여보내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경증으로 판단된 환자들이 응급실 밖으로 내보내졌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10시간 만에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지는 진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누울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밤새 대기실 의자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 후였다.
안으로 들어온 다음에도 두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혈액 검사를 받고, CT를 겨우 찍을 수 있었다. 또 기약 없이 결과 기다리기를 서 너 시간..간호사를 통해 전해 들은 바로는 CT 결과 대량 출혈은 없다는데, 헤모글로빈 수치가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고 한다. 내시경으로 미세한 출혈을 찾아볼 건지 말 건지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로 다음 오더를 기다리며 다시 네 시간을 기다렸다.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응급 진료실에 살짝 노크하고 들어가서 주치의 선생님께 다음 과정을 한 번 여쭤보라고 권했다.
진료실 문을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PC 모니터 너머로 환자를 너무 많이 봐서 이미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린, 연세가 지긋한 주치의 선생님 눈을 볼 수 있었다. 딸아이 상태를 여쭤보니 선생님은 곧 우실 것 같은 표정으로 "환자가 많아서 아직 결과를 못 봤다.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으며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전공의들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저 선생님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체력과 정신력이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을 텐데..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의료 시스템을 자랑하던 우리 나라였는데, 누구 때문에 이 사태가 발발됐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때쯤에 다행히 아이는 내출혈이 없으니 집에 가도 된다는 주치의 선생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의료체계가 붕괴되고 있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정말 큰 일이구나 싶었다. 의사 개인의 책임감으로 버틸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았다.
이 중차대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누가" 해결할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