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

by hotlionheart


삼 분기에 정우라는 사 학년 남학생이 새로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고학년 중급반은 남학생들이 95프로 이상이어서 수업을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았다. 야단도 쳐보고, 달래도 보아도 내 목만 아플 뿐이었다. 출석을 부르며 그 학생과 잠깐 눈을 마주쳤을 때는 어떤 학생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월의 두 번째 주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들의 주의를 교재로 끌어오기 위해서, 여느 때와 같이 책상과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며 한 명씩 이름을 불러 문제를 풀도록 시키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학생의 머리꼭지를 잠시 내려다보며 이름을 떠올려보니 그 학생이었다.

“정우 한번 해보자. “라는 내 목소리에 정우는 고개를 꺾어 들어 나를 잠시 쳐다봤다. 그 이삼 초 동안 핏기 없는 얼굴에 안경 너머로 우울한 갈색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섬세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타임 더 수업을 하고 난 뒤 퇴근길 교통체증에 오십여분을 운전하고서야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출석부를 보며 상담문자나 전화해야 할 학생들이 있는지 훑어본 후, 노트북과 교재가 든 수업가방과 내 책 등 소지품이 들은 천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차에서 내렸다.


소파 위에 가방을 던져놓고 등받이 각도 조절이 되는 회색 의자에 기대어 앉아 같은 색의 스툴에 다리를 펴서 올렸다. ‘아. 좀만 쉬었다가 집안일해야지.’ 하고 있는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B반 정우 엄마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네 다름이 아니라 정우가 수업을 잘하는지 어쩌는지 궁금해서 전화드렸어요"


"아 네. 근데 어머님 목소리가 안 좋으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감기가 와서 누워있었더니.."


정우는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듣기 숙제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부탁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옷을 갈아입고, 한 시간 정도 침대에서 선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저녁거리와 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금치 된장국 끓는 소리와 온기가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아까 감기로 목소리가 푹 잠긴 정우 어머니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더니, 그 시절 젊은 엄마였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넘쳐나는 사교육 정보들에, 한 달에 교육비로 얼마를 써야 인서울 대학을 갈 수 있다더라, 요즘은 유학이 필수코스야.라는 소리도 들려오던 그때. 젊은 엄마였던 나는 내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내가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해줄까 봐, 기준도 없는 불안한 육아를 하면서 아이를 영어학원 셔틀에 태워 보내고, 수학 과외 선생님을 수소문하고 다녔었다.

엄마의 불안한 감정이 아이에게 전염이 되어서였을까 그때 내 아이는 부쩍 짜증도 많아졌고 사춘기도 빨리 오게 되었었다.

그 시기를 다 지나고서 이제 뒤돌아 보니, 앞날을 준비한다는 명목하에 현재를 불안하게 보낼 필요도 없는 것이었고, 누구 한 명이라도 학원 정보 대신에 내게 엄마노릇 잘하고 있다고 해줬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내 몸 아프면 만사 귀찮아지는 건데, 자식 일이라고 몸져누워있다가 나에게 전화까지 하게 만든 그 엄마의 마음이 내 가슴 한편을 저리게 했다. 나는 그때의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심정으로 어머니께 짧은 글을 써서 보냈다.



정우 어머님께


누워계실 정도로 편찮으신데도 자식 걱정에 연락을 주셨다고 생각하니,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버거웠던 저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때를 뒤돌아 보면 엄마로서의 저 자신을 믿지 못했고, 제 아이를 믿지 못해서 더 힘이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최선을 다 하고 계시고, 정우도 그런 어머님의 마음을 다 느끼고 있기에 잘해나갈 겁니다.

염려 마시고 감기에서 잘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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