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틴 여덟 번째 주제.
매년 한 두 번씩은 동네 엄마들과 남한산성 낙선재에 가곤 했었다. 가을이나 겨울에 생일이 한 명씩 껴 있어서, 계절의 정취도 즐길 겸 겸사겸사 멀리 나가곤 했었다.
이 엄마들은 딸의 친구 엄마들로,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마음이 맞아서 자주 연락하고, 서로 어려운 일 있을 때 도움을 주고받고, 생일도 챙겨주던 사이였다.
딸아이 수술받은 후에 새벽 응급실행과 각종과 검진을 돌던 시절에 아픈 아이의 엄마로서의 무게에 짓눌리고, 복잡한 가정사로 길을 걸을 때도 고개를 땅에 파묻고 다녔었었다. 그때 나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머릿속에서는 수술시기를 한 달 아니, 일주일을 앞당겨 받게 되는 장면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정상적인 몸으로 학교도 가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는 장면을 나도 모르게 무한재생 시키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불러내어 커피 한잔 사주면서, 잠시라도 눈을 들어 산책로의 꽃과 나무를 보게끔 만들어 주던 엄마들이었다.
가을 어느 날 내 생일쯤이었던가 단풍구경 삼아 우리는 낙선재에 또 가게 되었었다. 맛있는 밥 한상을 다 먹고 나서, 낙선재의 붉은 단풍과 한옥의 아름다운 선에 탄성을 지르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나는, 쌀쌀한 바람이 눈에 닿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양볼을 타고 내렸다. 한 손으로 투박하게 눈물을 훔치는 내 곁에 앉아서 나를 위로해 주던 그때의 그 엄마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어제 딸아이를 데리고 낙선재로 향했다. 피크타임이 지났는데도 대기자가 많아서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아이가 불같이 화를 내며 뒤돌아 선다. 나는 달래 볼 생각도 못하고 허겁지겁 사진 몇 장 찍으며 차에 먼저 가 있는 아이에게 근처 다른 식당에라도 가자하니, 비탈길에서 덜컹거려 속이 안 좋다고, 숙소로 데려다주라고 한다.
산에서 꼬불꼬불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그 가을 어느 날 산길을 내려오면서 함께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곱게 물든 단풍잎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잠시 황홀했던 그때가.
#글루틴 #팀라이트